ㅡ 우리의 현실
양지녃에 매화 향기 가득하고, 강물도 풀리어 아지랑이 피어오를 듯한 봄날이었다.
멀고도 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그 여자는
나와 아주 가까웠지만, 마음이 멀어졌었다.
그 여자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길이었다
살다 보니 과거, 현재, 미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셋은 언제나 함께 뒹굴었다. 그래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으려 뾰족하기도 했다.
빈소 없이 1일 장을 원했지만, 무리였다.
거의 다 화장을 원하는 데다, 화장장의 규모보다 많은 사망자들로 나흘장이 되었고, 그마저도 연고가 부산이라 가능했다.
긴 연휴가 끝났고, 형제들은 다 팔순을 바라보는 데다, 건강마저 여의치 않았다. 조카들도 나의 아이들도, 남편마저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월요일이었다.
현실이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혼자 장례를 해결해도 괜찮았다.
고인은 가족이 없었다. 다행히 죽음복은 있어 마지막 모습이 해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요즘의 장례문화'를 소개한 유튜브를 봤다.
평소에 '가족의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당황하지 않는다는 젊은 장례지도사의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내용은 내가 경험한 그대로지만, 현실이어서 담담하게 봤다. 특히 부산은 노령층이 많아서 부산을 기반으로 한 장례에 특화된 내용이었다.
☆ 눈에 띄게 바뀐 장례 문화는
1. 카톡으로 부고를 보내는데, 계좌번호가 온다.
ㅡ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기 전 날, 막내 시누이 시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연고가 창녕인 데다, 아흔이 넘으셨고, 오래 요양병원에 계셨다.
남편은 가야할 지, 어쩔지 망설였지만 보내온 계좌번호로 송금을 했다(2 ~3 년 전이면 가족 행사를 뿌리치고 달려갔다).
2. 조문객이 적다.
ㅡ 그럴 수밖에 없다.
3. 조화가 줄었다.
ㅡ 경쟁적으로 늘어놓던 조화가 줄었다.
2025년에 영락공원에 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
확연히 느꼈다.
4.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ㅡ 상주들이 울지 않았다. 간간 울음소리가 나던 곳은 어김없이 젊은 나이의 故人이었다.
이제는 매장보다 화장이 대세다.
31년 전 엄마가 가실 때와 다르게 화장장 시설은 늘어났지만, 부산뿐 아니라 경남 지역의 수요도 감당해야 하는 영락공원이다.
대형 리무진 버스보다 소형차들이 많았던 것은
세태를 보여 주는 거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