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라면 맛이 최고가 아닐 수도

ㅡ 맛은 기억이다

by 민교

일요일 오후였다. FM 라디오로 음악을 듣 있는 데, 아들의 카톡이 왔다. 식탁에는 치즈가 듬뿍 뿌려진 새우 파스타와 초록나물들이 보였다.

"맛있. 잠깐만, 기차표 끊을 게~~~"

라 했더니, 'ㅋㅋㅋ' 만 날아왔다. 그리곤 조용했다.



아점이라기엔 늦은, 오후 3시에 가깝다.

아들 일을 일일이 알 수 없지만, 간간이 카톡으로 보내주는 일상 고맙다. 주말에도 가끔 출근하는 아들이 식탁 그득하게 차린 음식 사진을 보내면 편안하다는 말이다.



아들이 처음 만든 음식은 짜파게티였다. 엄마와 동생이 끓이는 걸 찬찬히 보더니, 점심은 자신이 끓여준기에 밀쳐놓은 바짓단을 기웠다. 냄새가 난 건 한참 전인데도, 식탁 주변은 조용했고 가스불에는 짜장 냄새를 풍기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면은 불어서 납작 당면만 하고, 국물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가스불을 끄고 국물을 따른 뒤에 대접에 담자, 아들은 크게 한 젓가락 뜨곤 내 얼굴만 쳐다봤다. 다른 대접에 듬뿍 담아서 맛있게 먹는데, 딸은 그런 모자가 웃긴다는 듯

"그게 무슨 음식이라고 맛있게 먹노~~~"

한다.

라면도 아니고 짜파게티도 아닌 음식은 맛으로 먹은 게 아니라, 아들이 만든 첫 음식이어서다.



오후 2시에 방송되는 FM 라디오의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 프로그램은 들은 지 오래다. 결혼 전에 저녁에 듣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생활경 이 바뀌면서 아침에서 오후나 저녁 시간으로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바뀌었다.

<명연주, 명음반>은 아이들이 방학이면 배경음악이 었다. 간간이 귀에 박힌 곡을 흥을 거릴 때는 반복의 힘을 느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던 어느 날이었다. 독자 코너에 전화 번호와 이름을 남기면, 추첨을 해서 2장의 티켓을 보내준다는 말에 전화번호를 보냈다. 운이 좋았던 지, 내 번호가 불렸다. 아이들은 무조건 OK.



토요일 오후 7시 30분의 음악회에 가려면 마음이 바쁘다. 버스를 환승해야 하고, 끝나는 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저녁을 먹기도, 안 먹기도 그랬다. 이른 점심을 간단히 먹고, 점저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그런 저녁을 먹는데, 아는 동생이 지나다 들렀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먹던 저녁은 두고 동생이 가져온 빵과 과자에 정신이 팔렸다. 토요일 오후 문화회관 근처는 많은 공연 으로 교통지옥이다. 그때 잘 켜지던 부엌 전등까지 말썽을 부렸지만, 우리는 문화회관으로 갔ㆍ다.



음악회 시작을 10분 앞두고, 아이들은 정해진 좌석으로 가고, 안내원이 아이들과 온 보호자들은 3층으로 안내해 주었다. 음반 감상 시간이었다. 진행자는 멀리 부산까지 온다고 희귀하고 좋은 음반을 욕심껏 가져와서 관객을 즐겁게 해주었다. 보통 음악회는 2시간 가량에다 앙코르가 있어도 10시경에는 끝나야 했다. 그런데 진행자도 관객도 지칠 줄을 몰랐다. 끊이지 않는 관객들의 요구에 11시경에 끝난 음악회.



집으로 가는 버스는 기다려도 오질 않고, 아이들은 저녁이 부실해 배가 고팠다. 근처 마트도 다 문을 닫은 시간, 서면으로 가는 버스가 보여서 그 버스를 타니, 지하철 역에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사람들이 뛰어서 우리도 따라 뛰었다. 막차였던지, 어떤 학생이 지하철 문을 꼭 밟고 서있었다. 우리는 그 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벽에 기대어 섰다. 지하철 안은 붐볐고, 부산진역 근처에 가자,

하나, 둘 자리가 생겨서 흩어져 앉았다. 중앙동에서

나란히 앉았는데, 아이들은 긴장이 풀리자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었다. 서너 구역을 더 가서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도 늦게 왔던지

"라면 끓이려고 물 올리고 있다. 네 개 끓이면

되겠네."

한다.

"무슨 소리야. 한 봉지 다 해야지. 아이들 먹성이

얼마나 좋은데."

곧 택시가 왔다. 집 뒤 아파트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집이 가까울수록 라면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라면이 다섯 개라 냄비가 작아 보였다. 계란은 세 개뿐이라 대접에 풀어서 넣는다 싱크대에는 컵데기가 흩어져 있다. 아이들이 손을 씻고 와서 식탁에 앉고, 곰삭은 배추김치를 가위로 썩둑썩둑 잘랐다. 식탁 위에 냄비 받침대를 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라면을 남편에게 한가득 떠주고, 아들과 딸도 라면을 떠주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은 후라 라면이 정말 맛있었다.



어, 그런데 그렇게 어질러 놓았던 마루가 깨끗이 치워져 있다. 그러고 보니 전등도 갈아 끼웠네. 우렁각시는 분명 아니고 우리 집 맥가이버가 멋진 활약을 했구만.

아이들이 라면을 먹으며 '맛있다.'는 감탄을 몇 번이고 했다. 그때다. 때를 놓칠 리 없는 남편이

"내가 못하는 게 어딨노. 방을 못 치우나. 전등을

못 가나. 라면 맛은 또 어떻고. 기가 막히제."

한다. 아들은 빙그레 웃기만 하고, 딸은.

"잘 먹었습니다."

하며, 제 방으로 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사태를 막아야 한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라면 하나 끓이라.'라고

큰소리를 칠 줄 알았는데, 어질러진 마루청소에,

전등도 갈고, 라면을 끓이기까지 했으니, 그 공이 얼만가 말이다. 이럴 땐 끊임없는 질문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

"당신, 마루 치우고 찌꺼기는 어쨌는데. 전등 갈 때 종이 포장지는 어디에 넣고, 라면 끓일 때 손은

씻었나?"

하는 데, 익숙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쯤 있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아, 취한다. 내 깨우지 마라."

하자, 사방이 고요해졌다.

엄마가 말하던 '밤이 아홉'인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루에 나와 음악회에서 들었던 음반이 집에 있는지 뒤적여보다가, CD밖에 없자 실망스 러운 얼굴이었다.

"그래도 오늘 라면은 참 맛있었다."

고 하는 아들의 말에, 딸이

"진짜 맛있었다. 아빠한테 다음에도 끓여달라고

해야지."

하는데, 잠귀가 밝은 남편이 잠꼬대인 듯

"뭐라하노."

한다.

아들과 딸은 이구동성으로

"하여튼 아빠는 자기 말만 하면 깬단 말이야."

그러면서 웃었다.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정리하니,

밤은 호랑이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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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맹인 나는 늦게까지 부엌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음식 못하는 사람 >인데, 끓이고 찌는 음식보다 모양과 색깔을 맞춘 일고 여덟가지 고명을 얹은 국수는 빠른 시간에 잘 한다.



아들은 첫음식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손이 많이 가는 고명을 만드느라 좁은 싱크대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는 이태리 라면과 잡채, 국수 사진을 곧잘 보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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