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그건 전화위복이었다
병원은 금요일 오후 근무를 마무리할 시간인 데다, 정형외과 과장님은 부재중이었다. 응급실에서 한참 대기하다 병실로 옮기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남편에게 아들이 다쳤다는 전화를 하고 나자, 맥이 탁 풀렸다. 그러고 보니 전날 저녁부터 체기가 있어서 아침부터 먹은 게 없었다. 간호사가 급하게 와서 내일 긴급수술을 하니까 푹 자라면서, 진통제를 놓아주고 갔다. 아들은 간호사가 나가자, 미안했던 지 소리 없이 울다가
"엄~마, 미안해요. 축구화 신고 미끄럼틀을 올라가다 미끄러졌어요."
라고 했다. 아니 6학년이나 된 놈이 축구화를 신고 미끄럼틀에 올라갈 생각을 하다니, 기가 찬다. 친구는 미끄럼틀에 오른발을 대고, 왼발을 올리다 그대로 미끄러졌다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걱정할 친구집에 전화를 하고 들어오니 진통제 효과인지, 잠이 들었다.
아들 침대 옆의 간이침대에 누웠다. 아들은 다친 다리가 아픈지 가끔 얼굴을 찡그렸다. 잠든 아들의 얼굴에는 아이다운 천진함이 있었지만,
엄마의 밤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척 길었다.
다음날, 수술을 앞두고 긴장을 했는지 아들은 말이 없었다. 그때 아래층에 사는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아들을 보고
" ○○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푹 자고 나면 수술이 끝난다."
고 하셨다. 아들은 마취선생님 말을 잘 새겨들었다. 나와 딸은 고맙고,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간호사가 침대를 수술실로 밀고 갔다.
수술은 정해진 시간보다 길었다. 12년 전 아들을 낳았던 분만실과 나란한 수술실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입이 바작바작 탔지만, 곁에 딸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던지.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마취선생님이 병실에 오셔서
"○○가 전에 수술한 적이 있나요? 왼쪽 발뒤꿈 치가 찢어졌던데."
라 하신다. 갑자기 아득해졌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주택에 살 때, 계단참에서 보자기를 잡고 내려가던 날에 발뒤꿈치가 엉덩이보다 빨리 땅에 닿았었나.
참,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아들이 떨어졌을 때, 엑스레이 한 장 찍을 생각을 못한 엄마나 아픈 내색을 안 하던 아들이나 미련하기라니, 저울로 달면 엄마 쪽이 더 기울었겠지.
아들은 병원생활을 잘했다.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옆에 아저씨들이 주시는 간식도 잘 먹고. 무엇보다 그때 성장판을 자극했던지, 키가 쑥쑥 컸다. 17일 만에 퇴원한 아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깨금발로 온 집을 돌아보다가 자신의 방에 갔다 오더니
"엄마, 고맙습니다. 엄마가 고생 많았어요."
한다. 옷을 벗기고 씻기려니까, 한사코 자신이 목욕을 한다는 아들은 사춘기가 오고 있었다.
수술한 지 1년이 지나 왼쪽 다리에 박힌 심을 뽑았다. 가끔 '철이 안 들었다.'라고 하면
"엄마가 힘들게 넣은 철, 뽑았잖아"
하며 되받아칠 줄도 알았다.
그리고 중 2가 되었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무슨 일인지, 아들이 들떠 보였다. 여행을 간 다음 날 아침,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가 어제 친구랑 뛰어가다가 넘어지면 서 다쳤어요. 오른 손이 찢어졌는데, 병원에서 조금 안 좋다고 하셔서. ○○는 병원 갔다 와서 잘 자고 다른 아이들과도 잘 놀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수선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 멀리 병원까지 다녀오시고, 전화를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자
"안 그래도 ○○가 엄마도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고 하신다. 아들이 여행을 가기 전에 들떠있던 게 조금 신경이 쓰였는데, 예감이 맞았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온 날, 아들을 만나기 전에
남편과 딸과 같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집에서 담근 간장 한 병과 케이크를 드리고 오는 길에, 선생님이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아들은 선생님 복이 참 많다.'는 말을 했다. 아들은 우리들 보기가 미안했던지, 학교에서 집까지 5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빙빙 돌아와서 애를 태웠다.
다음 날, 아들은 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사흘을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수술을 맡았던
선생님은
"너 보기 싫으니까, 이제 오지 마."
라 하셨다. 그 선생님은 내리 3년을 수술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중3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무사히 지났다.
병원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휴가온
아들이 '허리가 아프다.'는 말은 폭탄이었다.
군인이 아픈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한참 애를 태우다 군부대 가까이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가서 수술실에 아들을 들여보냈다. 어떤 군인은 혼자 수술하고 퇴원을 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렸는데, 아들도 그러고 싶었다나.
일주일을 입원하고 퇴원하던 날은 새벽 첫차를 타고 갔다. 6월의 오후는 뜨거웠고, 아침부터 퇴원만 기다리던 아들은 응석을 부린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아, 그때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괜히 그걸 해라 해가지고."
"야, 니가 지금 제정신이가. 아무리 철딱서니가 없어도 그렇지. 지금 그 소리가 할 소리가. 나이 든 엄마가 새벽 첫차 타고 왔는데, 하는 소리라니."
하자, 아들놈은 아차 싶었는지
"아, 엄마. 그게 아니고~~~."
하며 연신 자신의 입을 때렸다.
안다. 그 악기가 싫었던 것을. 소리도 잘 내고, 재능도 있던 그 악기는 플루트인데, 플루트는
옆으로 불어야 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단다.
아들과 점심을 먹고 시외버스를 탔다.
초여름의 기~인 해는 가보고 싶었던 도시의 여러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시장에 가서 그 도시에서 가장 맛있다는 팥빙수를 먹고 늦은 저녁에 집에 왔다. 전화기에는 아들이 보낸 카톡에다 부재중 전화가 가득했다.
아들은 이후로 외과에 가지 않았다.
요즘은 회사일로 받은 스트레스로 가끔 탈모클리닉 에 간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