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아이는 아이였다
아들은 내과병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아이도 그랬겠지만, 날래기는 다람쥐요,
기어오르기는 얼마나 잘하던지. 방문을 열어놓고 문틀을 기어오를 때는 발바닥에서 접착제가 나오는
게 분명했다. 오래 딱 들어붙어서 오른발, 왼발을 바꿀 때마다 '착' 소리를 내며 문틀에 붙어있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래서였나. 다리는 날로 긁히고 살갗이 벗겨지거 나 했다. 저녁에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 내가 미처 모르는 상처가 있었다. 온 집을 뛰어다니는 아들 다 리에는 빨간약을 발라야 할 곳이 많았지만, 놀기에 바빠서 아픈 것도 몰랐다.
아들이 서너 살 때, 소방관이 나오는 TV 프로가
인기였다. 훈련 중에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계단참에서 줄을 타고 내려올 생각을 하다니. 대문만 닫으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기다랗고 조그만 마당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몇 개의 계단이 있었다. 아이들은 방과 마루와 마당으 로 이어진 공간을 뛰어다녔다.
대문만 닫으면 이어지는 계단 서너 개 넓이의 계단 참은 아들에게는 상상력의 장소였다. 밥도 먹고, 낮달도 보고. 가끔 별도 보던 그곳은, 높진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기다란 보자기를 동생에게 '꼭 쥐고 있어라' 하고는 담을 타고 내려갈 생각을 하다니. 힘이 없던 동생이 넘어지면서 아들이 '쿵' 하고 담장 밖으로 떨어졌다. 마실 물을 가지러 부엌에 갔다가 우는 소리에 놀라 뛰쳐나가니, 아들은 보이 지 않고 골목에서 아프다고 우는 소리만 들렸다. 황급히 대문을 열자, 다행히 다친 데는 없었다. 안고 들어와서 씻기고 재웠다. 때로 움직임이 과한 날은, 낮잠 시간이 아니라도 일부러 재우기도 했다. 하도 외과에 뛰어가던 때라 엉덩이가 아픈 줄 알았는데~~~.
◇◇◇◇◇◇◇◇
아들이 다섯 살 때다. 언니집에 놀러 갔다가 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보고 눈이 반짝했다.
올라가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 점심 먹은 걸
부엌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쿵' 소리에 이어 울음소리가 났다. 뛰어가보니 뒷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다행히도 언니 집에서 길만 건너면 외과 병원이라 들처업고 갔는데, 점심 시 간이었다. 아들은 등에 업혀서 아프기도 하지만, 커다란 주사를 생각했는지 겁이 나서 더 울었다.
그때 다행히도 간호사가 점심을 먹고 내려오다 우릴 보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간호사는 피가 나는 아들을 보고는 빨리 앉으라며 의자를 가리켰다. 아들은 겁이 나서 소리도 못 내고 몸만 들썩였다. 급하게 병원에 와서 아들을 달랠 게 없던 차라, 간호사에게 사탕을 하나 달라고 했다. 계산대로 사탕을 가지러 간 사이에 동생도 겁이 났던지 울먹이면서 우리 가까이 와서 오빠와 내 손을 잡았다. 간호사가 사탕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소독약과 주삿바늘 등을 늘어놓았다.
사탕의 단맛에 울음이 잦아들 때
"○○야. 니가 울면 머리가 흔들려서 선생님이 치료하시기도 힘들고, 더 많이 아파. 울지 말고 조금만 참으면 빨리 치료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래?"
라고 하자, 그렁그렁한 눈물을 달고
"네."
하고 힘없이 답했다. 아들은 간호사가 준 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이 뛰듯이 오셨다. 마침 병원의 2층에 집이 있어서 수선스러 움에 선생님이 식사 후 바로 오신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안 아프게 해 줄게."
하시며 소독약을 바르고, 찢어진 부분을 꿰매시다
"참, 그 엄마에 그 아들이네. 치료가 힘들어진다고
울지 말라는 엄마나 그걸 알아듣는 아들이나 똑 같다. 여기 이 자리가 정말 중요한 곳인데,
그 자리를 비켜서 다친 것도 하늘이 도운 거다."
하시며, 아들을 꼭 안아주셨다. 그때 간호사가
들고 있던 사탕을 아들에게 하나 더 주자, 고맙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너는 엄마한테 정말 고맙다고 해야 한다. 다른 집은 아들이 다치면 엄마들이 울어서 치료가 더 힘든데, 오늘 보니까 너는 연습이 많이 되었구나. 엄마 말 잘 들어라."
라고 하시자, 아들은
" 고맙습니다."
하면서 멀찍이 서 있는 동생에게 쥐고 있던 사탕을
내밀었다.
"아이고, 아들 고맙네. 그래 그 사탕은 동생 줘라. ○○도 놀래서 이모하고 오면서 많이 울었다."
그러자, 간호사가 다른 사탕을 아들에게 쥐어주 었다. 계산을 마치고 선생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하자, 선생님은
"잘 가라."
고 하시며, 아들을 꼭 안아주셨다. 아들은 마취 때문에 아프지는 않은지, 나와 동생 손을 꼭 잡았다.
집이 병원에서 멀지 않아서 언니와 헤어져 집으로 왔다. 아들에게"
"업고 갈까?"
물으니, 괜찮단다. 늘 뛰듯이 걸어 다니는 길을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왔다.
자신들이 노는 방에서 논다기에 이불을 깔고 좋아하는 TV 프로를 켜주었다. 미지근한 물에 수건 을 적셔 몸을 닦아주었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딸은 많이 놀랐던지, 내 등에 살짝 기대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FM 라디오를 틀어놓고는 셋이 낮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 창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 밤에 아이는 내 품에서 고른 숨소리로 잘 잤다. 다음 날은 뛰면 안 된다고 하자. 큰방과 마루, 자신의 방과 마루를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
아들은 호기심과 힘이 넘쳐 매일 진이 빠지도록 계단을 오르내렸다. 좁은 집을 맴돌다가 지치면 벽에 그림을 그렸다. 둘의 그림이 팔이 닿는 데까지 빼곡해졌다. 비가 오는 날, 밖에 나갈 수 없었던 아이들과 풀을 끓였다. 벽에 신문도 붙이고, 근처 벽지 집에서 얻어온 조각 벽지도 붙였다.
그 방은 언제나 알록달록한 종이들이 나풀거렸다.
유치원을 마치고, 학생이 된 아들은 웬만큼 다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에 온몸을 수색당하면 배시 시 웃던 아들은 3학년 때 깡통을 신발에 끼우고 다녔다. 그때 중학생들은 휠리스를 탔었지.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다니며 보습 학원에 다니지 않던 아들은 이웃집에서 공부를 안 한다고 걱정을 했다. 부모는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아야 한다는 신념 이었는데 말이다.
폭풍 같던 6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개학을 이틀 앞둔 날, 악기를 연습하러 학원에 갈 시간에 아들 친구 둘이 축구를 하자고 왔다. 아들이 학원을 빼먹고 축구화를 신고 간 지 30분이 지났을까.
벨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더니, 아들 친구가 풀 죽은 얼굴로 축구화를 들고 있었다. 가디건을 걸치고 지갑을 챙겨 집 뒤쪽의 아파트로 갔다. 아들은 놀이터 한쪽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가디건을 벗어 아들에게 입히면서 보니, 왼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아파트 입구로 업고 나와서 택시를 탔다.
※ 다음 내용은
그 엄마. 그 아들(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