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 세상을 배운 시간은 아니었을까
딸이 전화 중에,
"아, 말이야 바른말이지, 나는 암흑기였다니까. 아이들이 서로 주말에 뭘 봤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할 때, 나는 아이들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잖아."
웃으면서 말했지만, 말에는 뾰족한 침이 있었다.
♤ TV를 버리자
그때, 어떤 신문사에서 '거실을 도서관으로'라는
기획기사가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했고, 잘 읽어서 나도 그 기사대로 하고 싶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뭔가 순서대로 진행되어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상황 말이다. 얼마 전부터 조짐은 있었다.
10 년쯤 된 TV가 화면이 점점 줄어들다가 까맣게 되더니, '팍' 소리를 내며 꺼졌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TV를 앞뒤로 흔들다가 두들겨 보기 도 했지만, 돌아올 가망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틈만 나면 TV 앞에 가서 앉는 내가 한심해서
'이걸 어쩌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TV를 버리기 이틀 전이었다.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베란다에 가서 널지 않고, 지금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드라마를 챙겨본다고 TV 앞에 앉았다. 곧 아침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빨래바구니에 담아 온 옷걸이에 셔츠를 걸어서 한쪽에 두고, 수건을 세게 털면서 드라마에 몰입했다.
막장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드라마는 주먹을 불끈 쥘 만한 전개로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건을 탁탁 털다가, 주인공의 고구마 같은 성격이 답답해 서 털던 수건이 날아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드라마가 뭐라고. 드라마가 끝나고 이어진 광고는 방금 주인공을 맡은 배우였다. 드라마와는 다른 단호한 얼굴로 광고하는 제품을 빨리 사라고 부추겼다.
생긋 웃으면서.
"에잇, 뭐야."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다가 여러 배역에 나온 배우를 보면
"쟈는 ○○에 나온 갸네. 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가
아~들 고생시키노. 지 좋을라고 팔자 바꾸다가
나중에 어짤라고 그라노."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 배우의 사생활에는 관심 없지만, 엄마 말마따나 이 광고, 저 광고에 나오는 것이 그랬다. 한참 뜨는 배우가 광고를 많이 할 수는 있지만, 혼자 다 차지하다니. 그런데다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 광고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 그렇다 싶었다.
TV를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저녁에 아이들이 와서 TV 이야기를 하니, 고장 난 걸 알아서 그런지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래 TV를 버리자, TV를 버리면 한심한 내 꼴도 안 보고 얼마나 좋냐고. 결심을 하기가 그렇지 실행은 어렵지 않았다.
늘 아이들에게 말한 '사고는 순간이고, 수습은 기일~~~다.' 를 실행할 날은 가까웠다.
이틀이 지나서였다. 아침부터 밖이 시끄럽기에 베란다에 나가서 밖을 내다보는데, 트럭에 폐가전을 가득 실은 차가 와서
"컴퓨터, 텔레비전, 오래된 은수저 등등 삽니다."
하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몇 분 지나자 컴퓨터를 든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 우리도 TV 있어요."
하니, 아저씨가 오셨다.
"아, 이거 돈도 안 되는 거네. 뭐 다른 건 없어요"
라고 했다. TV 밖에 없다니까, 아쉬운 듯하더니
얼마간의 돈을 주시고 우리 TV를 가져가셨다.
TV가 있던 자리에 4인용 상을 가져다 두었더니, 학교에 갔다 온 아이들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집에 TV를 다시 들인 건,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 마음이 허할 때였다.
♤ 언어 성적이 좋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친구를 데려왔다.
아들의 친구는 야자를 마치면 집이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산다고 했는데, 아들을 따라 현관문을 들어서다
"어머니, 저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학교에 갈래요. 괜찮죠?"
라고 한다.
저 녀석 봐라. 나이 차이 나는 누나가 둘이라더니, 붙임성도 있고 넉살이 좋네. 아들은 친구가 자고 갈 걸 알았던지, 아무 말도 없다. 그때 동생이
"오빠, 오늘 마트 가서 오빠가 좋아하는 파란색
머그컵 사 왔다. 그림도 오빠 좋아하는 걸로."
그때 봤다, 아들 친구의 얼굴을. 조금은 놀란듯한
얼굴이 금방 바뀌면서
"어머니, 이제 알았어요. ○○가 언어 1등급 하는
비밀을. 우리 집은 누나가 둘이라도 개인컵도 없고, 인사도 잘 안 하는데. 여기는 ○○가 좋아하 는 색깔과 그림이 그려진 컵을 사 오고 ~~~"
"나는 니가 더 대단하네. 동생이 하는 말 조금 듣고
집안 분위기도 알고, 또 좋아하는 물건을 샀다는
말을 듣고 언어 등급에 연결하는 건 아무나 못 하는
건데."
라며, 아들 친구를 칭찬했다.
아들 친구는 아들이 부러운지 한 번 흘끗 쳐다보다 가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녀석들은 뭐가 재밌는지
한참 시끄럽다가 조용해졌다. 친구 녀석은 가끔
아들을 따라 놀러 오다가, 군대에 잘 갔다 오겠다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감동이었다. 친구 엄마까지 챙기는 섬세함이라니. 그러다 잊고 있었다. 아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 때, 다른 친구에게 들었다면서, 집에 놀러 오던 친구는 복학하고 연애사업이 무척 바쁘다고 했다.
♤ 6인용 테이블에는
남편은 마루에 있는 상이 작아 보였던지, 6인용 테이블을 사자고 했다. 4인용 상은 작아서 펴놓은 책들이 마루에 뒹굴었다. 남편은 직장에서 읽던 신문을 가져왔는데, 중앙지 세 개에 지방지가 하나였다. 신문을 꼼꼼히 읽으려면 책을 볼 시간이 모자랐지만, 우린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학교나 다른 집에서는 '사설'을 읽혔지만, 아이들이 기사만 충분히 재밌게 보면 어려운 사설을 꼭 읽지 않아도 되었다.
아들은 신문에 나온 TV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다가 신문마다 다른 점을 발견했는지, 나름대로 재해석 한 드라마를 들려주었다. 잘 들어주는 엄마가 좋았 던 지 그 시간은 오래 계속되었다. 아들은 어쩌다 해야 할 일에 꾀를 부리면, 하기 싫은 이유 5가지를 말하기가 싫어서 하기 싫은 일을 해냈다.
아이들은 악기를 배우는 학원 말고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학교에 갔다 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음악도 듣고 신문으로 세상과 감정을 배웠다. 아들은 중 3 때까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했다. 배우인양 이야기를 할 때 여러 표정을 지었지만, 점점 테이 블에는 연필선이 그어졌다. 아들은 집에선 편안했 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는 거리감을 느끼 고 있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자, 집에서 3분 거리에도 기숙사에 들어갔다. 아들을 거리에서 가끔 마주쳤지만, 모자는 서로 모른 척했다. 학교 근처 시장에는 눅진하고 달달한 떡볶이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에 가고 나서 떡볶이집 사장님은 아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주 갔었나 보네.
딸은 아들과 달리 신문 읽기에 시들했다. 가끔 신문을 읽었지만,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봤다.
혼자 방에서 쥘베른 시리즈와 지구별 이야기에 푹 빠졌다. 딸의 꿈은 알 수 없었지만, 예사로운 건 아닌 듯했다.
♤ 되로 주고 섬으로 받은
누구나 컴퓨터를 웬만큼 하는 때였다. 아이들은 컴퓨터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으나, 보내지 않았다.
내 생각에 전문가의 시대가 되어 학원에서 배운 건 쓸모가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어떻게 컴퓨터를 익혔는지, 잘했다. 얼마나 엄마가 미웠을지.
학원에 안 보낸 것이 1이라면, 아이들이 컴퓨터에 관한 걸 나에게 가르쳐줄 때는 1, 000 쯤으로 돌려받았다. 구박은 심했다. 우리가 어떻게 익힌 건데, 쉽게 가르쳐주냐고. 내가 하던 말을 흉내 내는 높고 빠른 딸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휴!
K 가 성에 들어가려고 온갖 것들과 부딪치며 애를 썼던 것처럼, 나는 컴퓨터를 익히는데 장벽이 높았다.
나는 '쥐구멍에도 볕'이 들 듯, 어찌저찌 익힌 컴퓨터로 PPT를 만들어 강의를 다녔다. 돌개바람이 아래, 위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이웃나라 이야기고, 모노톤으로 꾸민 화면에 코웃음을 치던 딸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고마운 선생님이다. 겁이 많은 나는 때로 딸의 노오픈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지만, 무서운 선생님의 지도로 생의 시간이 수월했다. 고마워!
♤ 암흑기라니?
딸아, 표현이 좀 세네.
그때 TV는 없었어도 너는 너의 장점을 찾은 시기였다. 공감각을 깨우치고 매일 소리가 달라지던 피아노가 있었지. 음표라는 세상에 빠져 행복했었잖아.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어 그 '암흑기'를 잘 지나왔기에 어디서든 당당한 니가 있음을 기억해라.
나는 그 시기가 내 인생의 벨에포크였다.
아이들과 이야기도 잘 되었고, 남쪽 창으로는 가을빛이 가득 들어왔었지. 밋밋한 마루에 붙일 포인트 벽지를 사러 갔던 부녀가 생각나네.
딸아, 그날은 늘 배가 부를 때 그 앞을 지나쳐서 못 먹었던 계란빵이 품절이라고 아쉬워하며 아빠하고 싸우진 않았겠지.
돌아보면 그때가 아이들이 인생을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간간 아이들이 '저메추'를 묻는 카톡에 답을 하면서, 암흑기라던 10대 초반이 원석을 다듬던 시간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