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부산역과 서울역 사이에서
테토녀들의 알록달록 추석 연휴
딸을 만나러 부산역에 가려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요즘 인기 있는 동양사라다를 사려면 오픈런을 해야 한다. 며칠 전 모퉁이 극장에서 영화가 11시 30분에 끝나자마자 갔더니, 11시에 문을 연 가게에 줄도 여럿인 데다, 아침에 만든 사라다가 거의 바닥이었다. 청년들이 떠난 동네의 오래된 시장에서 사라다 가게를 열어, 마침 활기를 띠는 피자집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 동네로서는 행운이다. 큰 결심을 한 청년들이 고맙다.
딸을 2시가량에 만나기로 해서 사라다를 사는 시간이 조금 애매했지만, 뭐 어떤가. 참새 방앗간인 할머니 커피집에 들러서 식용유 1병을 드리고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거의 맞겠다 싶었는데, 할머니는 자물통을 채우고 외출 중이셨다. 할머니와 보낼 수 없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1kg이라는 무게가 느껴져서 할머니 이웃집에 식용유를 드렸다. 일정한 아침 시간에 집 앞을 지나간다고 인사를 하시던 게 고마워서.
은행을 두 곳 들르고, 동양사라다를 샀다. 아보카도를 넣은 사라다는 먹기가 불편해서 집에서
과일칼을 비닐팩에 둘둘 말아왔는데, 가다가 불심 검문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부산역으로 걸어갔다. 부산역에는 늘 그렇듯이 붐볐고, 딸이 탄 기차는 연착이란다. 1시간을
인터넷과 TV를 보며 기다리는데, 부쩍 많아진 외국관광객들의 다양한 언어가 마치 언어 전시장
같다. 근처에 부산항이 있어 기차를 환승하려는 사람들까지 더해 어수선함은 이전의 몇 배다.
딸이 환히 웃으며 왔다. 3개월 만에 만나는데, 달라진 헤어스타일이 달라 보이나(?). 점심을 못 먹을 줄 알고 준비한 사라다였다. 나를 보자마자 배가 고팠고, 커피가 땡겼고, 시끄러워서 잠도 못 잤다고 종~~~~~알종알. 그때 연착한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캐리어 소리에 귀가 먹먹해서 눈을 감고 방향도 잃었다.
"엄마, 커피"
하는 소리에 놀라 커피를 사서 북항대공원에 갔다.
안개도 아니고 는개도 아닌 것이 북항대공원을 감싼다. 공원 입구 테이블에서 과일칼로 사라다를 자르는데
"엄마, 할매가 겁도 없이 칼을 들고 다니고~"
"할매니까 그러지. 가방 열어라 하면, 사라다와 칼을 같이 보여주면 고개 끄덕이겠지."
"엄마가 그러니까 내가 원시인이라 부르지. 쪼맨한
할매가 걸음이 빨라서 누가 잡기나 하겠나."
하며 한참 웃었다. 모녀는 3개월 만에 만난 신고식을 그렇게 했다. 음표 같은 고등학생들이 부산의 유명 피자와 치킨을 들고 와서 북항공원에 생기발랄한 노래 몇 곡을 풀어놓았다.
다음 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조던 매터의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 이라는 사진전을 보면서 모녀의 시간도 빛나기를 바랬다. 비는 더 굵어졌고, 서가가 있는 커피집에서 마신 커피는 시간을 멈춰 세웠다. 어릴 적부터 영도의 모든 곳들을 좋아하는 딸은 청학동 영도구청 앞에서 아련히 먼 바닷가 어디를 눈에 담았었지.
아들도 오고, 모처럼 집이 시끌시끌하다. 저녁을 먹고 모퉁이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소극장이 라 그런가, 우리가 볼 영화는 관객이 적다. 자리를 잘 못 잡았다고 딸이 한마디 하려는데, 푹신한 의자 가 잡아끈다. <어쩔 수가 없다.> 2D 영화라 어쩔 수 없다지만, 가족이 다 보고도 ₩29,000이면 괜찮지 않은가. 집에 와서 한참을 영화이야기로 열을 냈다. 대책 없이 변화하는 세상과 적응에 대해서.
추석이라 탕국도 끓이고, 정구지 전도 부쳤다.
쟁반이 수북하도록 굽던 버섯, 오징어, 호박전은
추억이 되고. 아이들은 오로지 '아 ~ 아'만 찾는다.
얼음이 녹으면 맛이 옅어질 아~아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도 손님인 아들, 딸을 위해서 산책길에
'아 ~아' 두 개를 챙겨 왔다.
부산항대교를 지나가는 버스가 생긴 건, 7월 초다.
곡예처럼 오르는 그 다리를 버스를 타고 몇 번을 오갔다고 딸에게 자랑했었다. 딸은 그 대교가 만들 어지는 과정을 학교에 다니면서 봤지만, 지나는 건 처음이라 재밌어했다. 북항대교는 단숨에 올랐고, 컨테이너 트럭이 지나가는 지역에선 하세월이다.
그러고도 광안대교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차, 차, 차들. 납작한 승용차들이 끼어들어 더 복잡한 데, 딸은 영도대교쯤에서 예약한 설렁탕집 앱에 들어갔는데, 135번이 110번으로 87번으로 되는 중이다. 버스를 내려서 환승을 하고, 10분을 걷고도 대기번호는 30번이라는 숫자에 맥이 탁 풀린다.
어린 아기도, 나이가 든 사람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는데, 현관문에 <이른 재료 소진으로 새 대기번호 를~~~>를 줄 수 없다는 안내문까지 붙었다.
기다림이 일상이 된 세대가, '이래 기다리면 뭔들 안 맛있겠나.' 하던 말은 진리였다. 자리에 앉고도 언제 설렁탕이 나올지 모르지만, 창밖에서 떠는 아기를 봤던지라 솔직히 가격 대비 맛은 아니었다.
쫓기듯이 먹고 나와 걷는 동백섬은 더없이 좋았다.
딸이 서울로 갈 때, 같이 갔다. 이사를 한 것이다.
부산역은 정신이 없었고, 승객들은 거의 2, 30대 여성이다. 딸 옆자리에 앉은 승객은 아직 익숙지 않은 타향살인지, 서툰 엄마의 모습이 날 닮았다. 내 딸은 엄마가 절대 기차에 올라오게 하지 않지만, 당부, 당부를 거듭하는 엄마 마음은 읽혔다.
서울역은 3개월 전과 같았고, 이사한 딸 집은 생각보다 좋다. 그 집에 이사 가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데. 고향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서울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아리다. 그럼에도 2평 정도 넓어진 집으로 이사를 해서 수납공간이 많아졌다고 자랑을 한다. 그렇다고 예쁜 쓰레기는 쌓지 말기를.
다음 날, 딸이 자랑하던 무쇠 솥으로 표고버섯을 넣고 밥을 해주었다. 한 숟가락 크게 떠서 갓김치를 올린 솥밥은 그 무엇보다 맛있었다. 계란국도 일품이었지.
가보고 싶었던 청운문학도서관에 갔다. 비가 와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는 그 과정이 좋다. 한옥으 로 된 청운문학도서관은 비가 와서 더 운치가 있네. 근처에 있는 초소책방에서 마신 커피는 달았다.
옛 서울역사에서 100주년 전시를 보고, 서울역에 서 아들을 만났다. 역에서 만난 아들은 새롭네.
저녁을 먹는데, 딸은 먹고 있던 이국의 음식을 먹으러 그 나라에 가보겠다는 말을 해서 한참 쳐다봤다. 나와는 음식 취향이 다른 딸은 비행기표를 검색하겠지.
집으로 오는 날, 비 오는 보라매공원에 갔다. 공원에는 가을이 오고 있었고, 바람이 조금씩 인다. 되짚어 오는 길에는 새부리 같은 신발을 신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경쾌하다. 자전거는 속도를 줄였고, 새들은 날아올랐다. 비 탓인지, 바람 탓인지, 따뜻한 국밥이 생각나서 딸 집 근처의 국밥집에 갔다. 실내는 깨끗했고, 꼴뚜기 젓갈과 깍두기, 김치가 담긴 소반은 정갈하다. 말간 국밥은 가격도, 기다림도 없고, 조용한 것이 먹기에 알맞았다.
집에 와서 가방을 메고 서울역으로 왔다. 더 더 많은 사람들로 복작대는 서울역 스타벅스에 도전해 본다는 딸은 이번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롯백을 구경하다가 어제 봐둔 패딩을 몇 번 입어보는 딸, 가격의 30%를 지원해 줬다. 좋아하는 딸을 보니 어릴 적 내가 생각나네. 옷을 좋아하는 나는 옷가게 구경을 많이 갔었지. 서른이 넘은 나에게 꼬깃꼬깃한 쌈짓돈으로 맞추어준 검은
블라우스와 치마는 내 딸도 기억하는 옷이다. 자랑을 많이 했기에. 그 엄마, 흉내 내보았다.
기차는 서울역을 떠나 부산역으로 가려는데,
좌석까지 따라온 딸은 엄마가 못 미덥나.
"이제, 가라."
매몰차게 딸을 보내고, 속으로 한마디 한다.
"몸은 젊을 때 아껴야 돼. 그 무쇠솥 무거워서 손목
다 나간다. 게으름이 보약이듯, 힘도 아껴놔라."
창밖에 선 딸을 손짓으로 쫓으니, 바퀴가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