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신의 길을 가셨다

ㅡ 막내는 울지 않았다

by 민교

♡ 엄마는 길을 막 말라고 하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가신 다음 해에 장사를 그만두셨다. 오빠의 생활은 안정되었고, 엄마의 기침은 잦아지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돌아 신작로에 들어서면 공기가 다른 바람으로 '끙' 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이 안 가는 소리를 내뱉었다. 멀리서도 확연히 구분되었다. 엄마는 난장에서 오랫동안 찬바람을 쐬어 기관지가 많이 나빴고, 자식들을 위해 점심까지 걸렀던 터라 위도 좋지 않았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신장염이었다. 엄마는 오는 손님도 손님이지만, 깔끔한 성정으로 성당 사람들이 화장실 사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신장염으로 자주 얼굴이 부었었다.



장사를 그만두고 갈 곳도, 친구도 없던 엄마는 연례행사처럼 한 해에 한 번씩 입원을 했다. 가뜩이나 적은 몸무게가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고 나면 더 홀쭉해진 모습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다시 밭으로 갔고.

혼자 깻잎을 따서 신작로에 펴놓았다.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누어주던 깻잎은 엄마의 밥벌이가 아니라 소일거리였다. 그때 어릴 때 익히지 못한 한글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음에 속상해했다. 엄마는 자의식이 강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었던 엄마는

그 옛날, 길쌈하던 때를 떠올리며 실꾸리를 만드셨 다. 내 기억에는 없는 엄마의 부엌도 등장했다. 여름날이었다. 흰 갑사 저고리 소매를 둥둥 걷고 보자기로 앞치마를 두르고 누렁덩이 호박을 쪼개서

동부도 넣고, 쌀가루도 넣은 호박죽을 끓이던 엄마는 두 볼이 발개 새댁 같았다. 그리고 박을 많이 심으셨다. 올케와 나는 웃으며

"누가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러지. 저 많은

박바가지를 언제 바닥에 던지고 을라 하노?"

라고 하면, 방그레 웃기만 하던 엄마였다.

그 실꾸리와 박바가지는 엄마의 사랑이었다.


을 지을 때 쌀을 퍼는 바가지와

실꾸리도 닳아만 간다



엄마는 그럼에도 시간이 안 간다고 두리를 했다.

엄마는 어딜 그렇게 가고 싶은 걸까?



♡ 엄마는 염원을 이루었


엄마는 틈만 나면 그랬다. '오뉴월에 하늘문이 활짝

열린 날에 가고 싶다.'라고. 엄마는 내가 서른이 되고부터 노골적으로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라고 하셨다. 서른다섯이 되자

"지나가는 개도 안 물어간다."

고 쐐기를 박았지만, 서른여섯에 나는 결혼을 했다. 키가 큰 사위는, 가까이 사는 엄마가 집에 오시면 높고 너른 등으로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엄마는 '됐다.'라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자신의 길을 더 재촉하고 있었다.



엄마는 달포 가랑을 중환자실에 계시다 이틀 전에 퇴원을 하고 집에 오셨다. 한결 또렷해진 얼굴로. 아이를 얼르다가 마침 토요일이라 집에 있던 남편에게 '집에 가보자'라고 하니, 남편이 무언가를 만들다가 어제 갔다 왔다면서, 조금 꺼리는 눈치였다.

"지금 안 가면 ○○가 할머니 못 본다."

아이를 들쳐업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엄마가 빨리 들어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다 나은 듯 환하게 웃었고, 올케가 차려온 저녁상을 맛있게

드셨다. 올케가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설거지를 끝내고 들어오니

" ○○가 잠 온다."

, 우리를 집에 가라고 하셨다. 아들은 눈이 똘망했다. 마루를 내려와 신발을 신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엄마는 또렷하게

"고맙데이, 잘 가라."

고 하셨다. 새벽에 엄마랑 자던 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친손자가, 전화로

"고모, 할머~~~"

"그래, 바로 갈 게."

하며, 아이를 업고 서너 시간 전에 지났던 길을 걸었다. 우리를 보내고 하나뿐인 며느리에게

자신이 아끼던 것들을 꺼내라고 하시며

"고맙다."

며 오래 손을 잡았다던 엄마는, 하늘이 열리고 천지사방에 문이란 문은 다 열린 날에 자신이 영원히 머물 집으로 가셨다. 어떤 미련도 원망도 망설임도 없이 오롯이 자신만이 거할 곳으로.



나는 울지 않았다. 예쁜이였던 나의 엄마 힘들지도, 서럽지도, 배고프지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막내의 끈을 못 이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에 더해 막내 외손자를 안아봤고, 목에 힘이 안 들어가서 내 아이의 이름을 몇 번이나 고쳐

불러야 되었기에.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마지막 가시는 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노제를 드리려 준비할 때 비가 개이고, 하늘로 날아오르던 흰나비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찾으면 되는 거였다. 엄마는 일흔셋이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9화엄마는 온몸으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