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해석이다

ㅡ 선택은 너의 힘

by 민교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나의 엄마는

발달심리학을 잘 아는 여인이었다.


"아, 사람이 나이가 한 살 더 먹으면 계급이 '

하나 더 높아지는데, 전에 같이 살면 되나."

하면서 나를 채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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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김치를 담갔다고 톡을 보냈다.

추석에 왔을 때 곱게 빻은 고춧가루가 맛있다길래 조그만 견과류 병에 한 병 담아주었더니, 그걸로 담은 김치였다.

"엄마, 김치 맛있어 보이제. 김치 싫어하는 내가 처음 했는데, 잘했지."

하면서 전화를 했다. 그 전화 끝에 엄마는 40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머리가 그렇게 하얗게 됐냐고 물었다. 며칠 전 흰머리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뉴스를 본 뒤였다.


일은 무슨 일.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낳은 연년생 남매를 정말 누구의 도움 없이 키운 데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아내려는 스트레스였지.

그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다.


남편이 내게 준 스트레스 1호는 '좀 있다가'였다. '좀 있다가' 병은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 달리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집성촌에서 산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때 집성촌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나, 무엇을 결정해서 어떤 확답을 듣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 부분으로 많이 싸웠다. 그럴 때마다 동굴로 숨는 남편을 쳐다보는 내가, 흰머리가 왜 안 생기겠나.


남편이 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걸 안다.

인간 발달단계의 2기인 항문기(초기아동기, 2~4세. 자율성 대 치심) 단계와 3기인 근기

(학령전기, 4~6세. 주도성 대 죄의식)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것이다.


시가 형제들은 한 번도 시어머니의 자는 모습을

못 봤다고 했다. 이른 연세에 일만 하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했다. 막내가 갓 스물이 되어 도시로 공부하러 떠나려던 그때, 집의 기둥이 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영원한 부재는 안 봐도 읽혔다. 그 혼란을 겪으면서 애도는커녕 제 갈 길을 가야 했던 형제들은 서로 무덤덤하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가을서리 같았다.

난장에서 장사를 하고 오면 자주 딸들에게 셈이 맞는지 물었다. 배추 몇 포기에 무가 몇 개이거나, 다발무 몇 단에 배추와 양념 채소를 더한 가격을 불시에 물었다. 거기다 '비싼 밥을 묵고~~~'라는 말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말이었다.

그 시절을 보낸 우리 형제들은 다정함에 깃든 시샘이 있다.


나의 생을 지배했던 '나이가 한 살 많아질수록 계급이 높아져야 한다.'는 그 말은 금과옥조였다. 무디어지거나 생의 늪에 빠질 때마다 예리한 바늘이었거나 두레박이 되어 구덩이에서 나를 끌어내 주었다.


오래전에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습관적으로 지각을 하거나, 예고 없이 안 오는 사람 대부분은 유연성이 없었다. 엄마 말처럼 계급이 높아지길 꺼리는 사람들이었다. 엄마가 힘주어 말하던 '계급'을 하나 더 높이는 건 유연성이며, 책임감이었다.


남편이라고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이 쉬웠겠는가. 그도 직장이란 괴물과 맞붙으려 매일 새벽별을 보고 일어나 씩씩대며 집을 나서며 다짐했겠지.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지만, 가정적인 사람은 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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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도 수능날은 긴장되고 떨리는 수험생들을 떨게 한 수능한파는 없었다. 라디오로 음악방송을 듣는 중이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수험장에서 1교시만 치고 나온 학생도 많았지만, 이번에 수능응시자가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낭독해 준 글이 마음에 남았다. 그때 전화가 와서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없어서, 내용을 더듬어 인터넷에서

그 글을 찾았다.



길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처음엔 빠져나오는 데 힘이 들었지만,

두 번째는 조심했어야 했다.

세 번째는 그 길에 구덩이가 있는 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곳엘 갔다.

네 번째는 그 구덩이 가까이 가다가 구덩이를 피해서 돌아서 갔고,

비로소 다섯 번째에 다른 길로 갔다는 것은

계급이 하나 더 높아진 걸까.


그 낭독을 듣고 엄마 생각이 나면서 내가 수능을

봤던 날도 떠올랐다. 스물일곱의 7월, 느닷없이 입시학원에 등록을 하고 수험생이 되었다. 여름 끝자락의 체력장은 동아줄이었다. 1점이라도 더 받으려면 800미터는 뛰어야 했고, 800미터를 다 뛰고는 빨간 하늘을 보며 기절했었다. 희미하게 학생들이 '언니, 정신 차리세요.' 하는 말에 땅거미 지는 운동장을 빠져나오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다음 해, 주경야독을 하는 스물여덟의 신입생이 되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때로는 알면서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누군가가 그 길은 수렁이라고 몇 번씩 말을 해줘도 무시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는 나중에 자신을 말리지 않은 주변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어떤 선택은 그것만으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스물일곱의 늦가을, 수능을 치러 가던 날.

새벽에 일어나서 본 문제집에서 3문제가 나왔었다.

나는 엄마가 늘 말한'계급 하나'를 더 높였다고

생의 수첩에 적었다. 무언가 해냈다고 해석하면서.




※ 다섯 장으로 된 짧은 자서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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