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하우스일까, 홈일까
엄마는 어디서 쉴 수 있을까.
엄마는 부산에 와서 한동안 작은 이모집의 일을 도왔다. 그러다 6.25 전쟁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북적이는 영도다리와 자갈치, 시청옆 새벽시장을 둘러보고는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약방에서
익힌 셈과 물건을 구하는 방법을 알았던 터라,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장사는 좋은 선택이었다.
성당 담벼락에 기댄 엄마의 난장은 시장의 중앙이어서 위치가 좋았지만,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고 내는 자릿세가 만만치 않았다. 장사가 잘
되던, 안 되던 매일 뜯어가던 자릿세에 엄마는 진절머리를 내었다. 거기다 청소비까지 챙기는 통에 엄마는 자주 부아를 내었지만, 돈을 벌고
모으기가 어디 쉬운가.
남매는 연탄집을 하던 이모집 사정으로 나날이
꾀죄죄했고, 엄마는 언니집도 편하지 않았다.
장사를 마치고 좁은 골목을 올라오면 굽은 신작로에 이모집이 있었다.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야산 쪽을 쳐다보다 환한 달이 아카시 나무에
걸린 듯한 모습에 홀린 듯 서있었다.
또랑을 건너고 계단 서너 개를 오르자, 열 평 정도의 울퉁불퉁한 땅이 있었다. 이리저리 가지를
뻗은 아카시 나무가 ○○○의 집이라고 하는 듯해서 언니,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그 땅이 자신의
땅이기를 바라면서 매일 들렀다고 했다.
어느 날, 그 땅에 누군가의 집이 지어지는지 먹줄이
그어지고 방인 듯, 부엌인 듯한 표시에 넋을 놓은 채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한동안 말수도 줄고 행동도 느려진 동생을 보고, 이모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모퉁이 지나서 아카시 언덕배기에 조그만 집을
지으면 좋겠다."
툭 내뱉듯이 하는 말에 이모는 한숨을 쉬다가 알았다면서 이모부와 의논해 본다고 했다.
그 집이 엄마의 집이 되려고 했던지, 금이 그어진 채로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장사와 두 아이 챙기기와 이모집 흐드렛일까지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이모가
"그 집은 니 형부가 아는 사람이 지을 거라고 하더라. 3대가 살기는 좁고 뒤쪽에 바위를 깨면
동티가 난다고 망설이는 중이다."
라는 말에 엄마는 이모를 끌어안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단다. 이모부는 동네 유지였고, 야산도
이모부가 관리하고 있었다.
엄마의 지극함이 통해서였을까. 엄마가 모은 턱없이 적은 돈과 이모에게 빌린 돈과 이모부가 주선해 준 덕분에 방이 둘, 부엌, 마루와 2평의
마당이 있는 '엄마의 집'이 생겼다. 오빠와 언니는
집 위쪽에 피난민촌이 있는 동네에서 자가에 사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이모의 빚을 갚느라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아버지가 외삼촌을 길에서 만난 건 그즈음이다. 사할린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처자가 있는 부산, 그것도 처형들이 살고 있는
대신동을 찾아오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향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돈을 모았다던 아버지. 행색은 거지 같았으나 형형한 눈빛과 꼬깃꼬깃 접은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들고 처자를 찾아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