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가 필요해

ㅡ 엄마의 선택

by 민교

엄마는 따뜻한 집을 원했다.


엄마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아카시 나무를 젖히며 마당에 들어서다, 깜짝 놀랐다.

창호지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작은 외삼촌과 아버지의 말소리에.



방마다 호롱불은 켜져 있고,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자 사람 좋은 인상 외삼촌이 엄마를 툭 치며

"동생, 지금 오나. 인자 아~들 아버지도 오고, 돈만 모으면 되겠네."

하시며, 벌떡 일어섰다.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에

엉거주춤 서 있던 아버지도 활짝 웃었지만, 엄마는

하나도 반갑지가 않았다. 왠지 외삼촌이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삼촌은 훤칠한 키와 출중한 외모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저기 쏘다닌다는 소문에 외할아버지를 많이 힘들게 했으니까.



외삼촌은 엄마 얼굴을 한번 쓱 훑고는

"내, 간다. 아~들은 천천히 밥 주도 된다. 떡이랑 뭐랑 많이 묵었다."

하며, 아카시 나무를 지나 계단참으로 가고 있었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도 벅찬데, 이들은 배가 부르다면서 표정도 밝았다. 두 방을 왔다 갔다 하다가 작은방에 간 아들이

"아버지는 이 방 하면 되겠다."

고 정하는 게 아닌가.



엄마는 퍼뜩 정신이 들었지만, 남편이 와서 반가운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낮에 작은 언니집에서 일을 돕는 언니가 배추를 사러 왔다가

"동생, 아저씨가 많이 다쳤어."

하는 게 아닌가.

언덕배기를 정리하다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피를 많이 흘렸다고 했다. 가까이에 달려갈 병원도 없던 때라 집에서 치료를 해야 했다. 아이들을 챙기러 집에 왔다가 맞닥뜨린 이 상황이 좋은지, 어떤지는 따져볼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이모집에 갔다. 이모부는 내내 앓다가 겨우 눈을 붙였다고 했는데, 자면서도 끙끙 앓다가 가끔 '악' 하는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이럴 때 외할아버지의 약방이 근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데다, 외할아버지도 그 여파로 돌아가신 뒤였다. 그 연유로 엄마는 아버지가 집에 온 것이 안심이 됐다. 이모는 엄마 손을 꼭 잡으면서

"제부 왔제, 잘 됐다. 낮에 그 정신없을 때 진영 동상이랑 제부가 형부를 업고 왔더라. 그때 안 왔으 면 어짤뿐 했노."

하는 게, 아버지가 오신 게 굉장히 안심인 모양이었 다. 그도 그런 게, 이모의 살림 규모는 이모부 없이 잘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이모부는 본시 바지런해서 물불 안 가리고 일을 하던 분이라, 누워계시는 걸 많이 불편해했다. 연탄집과 돌아봐야 할 많은 것들을 누워서 들어야 하는 상황에 역정을 내다가 속병을 얻어서 6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돈은 많았지만, 위로 두 딸은 학생이었고, 막내인 아들은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이모는 혼자가 되었다.



이후 엄마, 아버지는 데면데면했으나, 아버지는 이모집의 일을 많이 도왔다. 엄마는 시장에서 장사를 잘했지만, 전쟁으로 갑자기 불어난 시장 상인들의 경쟁은 치열했다. 큰 시장은 매일 장날처럼 사람들로 넘쳐났다. 거의 시장을 둘러볼 뿐이고 배추, 무를 사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밑지고 파는 건 거짓말'이라며 배추 가격을 깎고, 또 깎아서 남는 것도 거의 없었다. 거기다 어쩌다 배추를 사려고 난전에 앉은 손님은 주위 상인들의 매서운 눈총을 감당해야 했다.



전쟁이 남긴 것은 차가운 난전을 체온으로 데워도 하루 세끼가 힘든 현실이었다. 대바구니를 맨 넝마주이가 갈고리 손을 내밀며 상인들을 위협했고, 기다란 집게로 무엇이든 대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어김없이 해가 지면 자릿세에 청소비에 매일 세금 아닌 세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넝마주이가 시장, 동네 할 것 없이

휩쓸고 다녔다. 굽은 신작로에서 놀던 아이들은

집에서 나오질 않았고, 엄마는 울타리를 얻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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