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나는 마냥 천진한 아이가 아니다
봄이 되자, 작은 이모는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웠던 야산을 우리에게 맡겼다. 엄마는 배추, 무만 팔기엔 경쟁력이 없어 상품의 다양화를 기대하던 때라 그 땅은 오아시스였다. 아버지는 굳은 땅을 파서 흙을 으깨어 군불을 때고 남은 재를 섞었다. 그위에다 뜨물과 채소 씻은 물을 부어 흙을 가라앉혔다. 좁쌀보다 적은 들깨씨를 뿌리고 깻잎이 자라기를 기다렸다.
얼마가 지나자, 어린 깻잎이 마주 보고 웃고 있었다. 엄마는 큰 이파리를 감싸 쥐고 그 아래에 조그맣게 올라오는 이파리는 다 훑어내라고 했다. 그래야 빨리 크고 좋은 이파리를 딸 수 있다면서. 손은 금방 까맣게 물들었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엄마의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에 꾀를 낼 수는 없었다. 시계가 없던 나는 자주 영도다리를 쳐다보다 영도다리가 들리면 밭에서 뛰어내려가 학교에 갔다. 오훗반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엄마를 닮아 예쁘고 영민했지만, 손이
빠른 데도 밭에는 오질 않았다. 그 문제로 다섯 살 나이 차가 나는 오빠와 언니는 많이 싸웠다.
"니가 공주님이냐"
하고 소리치는 오빠에게 언니는 눈을 착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는 더 열을 냈다.
셋째 언니는 지독한 왼손잡이였다. 다른 채소를 팔다가 틈틈이 대소쿠리에 담긴 깻잎단을 묶어 상품으로 내놓으려면 엄마는 손이 바빴고, 방향을 다르게 담아 온 깻잎은 한 번 더 손이 가야 했다.
내가 나설 차례였다. 대소쿠리는 가벼웠지만,
혼자서 소쿠리를 채우려면 이마와 얼굴에 흐르는
땀을 각오해야 했다. 가끔 오빠가 와서 응원을
해주었고, 아버지는 멀찍이서 흙을 으깨다가 무언가 모를 것들을 그렸다.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다. 오빠가 밭에서 연을 날리다, 연줄에 사를 먹인다고 유리를 주워 오라고 했다. 크고 작은 유리조각을 잘게 부수어 밀가루인지, 뭔지 모르는 가루에 섞어 연줄에 정성스레 발랐다. 연은 하늘 높이 날았고, 오빠는 기분이 좋았는지
"니는 학교가 좋나?나는 저 먼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올 거다."
하며 나를 보았다.
"오빠, 나 대학 보내주나?"
"그럼, 공부만 잘하면 유학도 보내준다."
나는 유학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내가
유리조각을 잘 주워와서 연도 잘 날아올랐고, 기분도 좋아진 오빠가 좋았다. 오빠는 고 3이었고,
서울 쪽으로 대학을 갈 거라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하고 온 날이었다.
오빠는 다음 해, 공고를 졸업한 회사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