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체이탈 경험기
유체이탈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선 해볼 수 없는 경험들을 해보게 되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남자가 돼보는 경험이었다.
눈을 떠보니 거울에 비친 나는 20대 중, 후반의 청년이었고
옆에는 안경을 쓴,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여자분이 계셨는데 직감적으로 그 분과 나는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분의 아버지와 오빠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다가왔는데, 날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더니
큰 맥주잔? 에 술을 한가득 따라 주었다.
이걸 다 마실 수 있어?라는 눈빛이었고 어째서인지
그때의 나는 술을 못 마신다,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현실에선 마시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자분은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그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잔을 들어 원샷했고
그들은 흠. 좀 하네. 그렇지만 앞으로 ( 내 딸한테 )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어라는 눈빛으로 돌아갔다.
그 여자분은 미안해, 괜히 ( 우리 오빠들 때문에 ), 그렇지만 고마워
라고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는 듯 환하게 웃어주었고
나는 그때 느꼈다.
아, 그녀가 독이라도 마시라면 난 정말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미소 하나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예전 남자친구가
' 아, 난 진짜 네가 독을 마시라고 하면 마실 수도 있을 것 같아 ' 라고
했었는데 그때는 그 말을 잘 이해를 못 했었다.
날 많이 좋아하는구나, 귀엽다. ㅎㅎ 정도.
그러나 반대의 입장이 돼보니 알았다. 무슨 마음으로 그때 내게 그런 말을 했었는지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그와 있을 때마다 때때로 신이 날 사랑하는 것 같은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은
묘하고 깊은 평온감을 느꼈었는지
어쨌든 난 그 경험으로 남자의 마음을, 남자의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받고 보호받길 원한다면
남자는 여자의 그 환한 미소 하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는 종족이라고.
- 그리고 여담이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에너지란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것인지 느꼈다
그 여자분은 딱 모범생 느낌의 여성스럽고 차분한 느낌이었는데
아, 그 느낌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던지
나는 덩치도 크고 제멋대로인 에너지인데, 그 차분하고 부드러운 에너지 앞에서 나는
이길 수 없었다. 그녀가 너무 좋고, 지켜주고 싶고, 허세라도 좋으니
그녀 앞에서 내 잘난(?) 모습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유체이탈의 장점이자 단점은 짧은 순간에 강렬한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고
그러나 결국 그 감정들을 뒤로하고 몸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거다.
저런 감정들이 쿵 하고 강하게 오면, 그런데 기어이 다시 몸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이 오면
드는 현타란.
아 차라리 그냥 저쪽 세계에서 태어나지 왜 몸을 갖고 이쪽에 왔지?라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요즘 하남자, 라는 말이 있는데 내 생각에 하남자 (하여자) 라는 건 없다.
다만 어떤 억압이나 기억으로 상처 입은 그의 남성성
즉 치유되어야 할 남성성 (여성성)이 있을 뿐.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치유되어야 할 한 인간인 거겠고.
그걸 알기에 요즘은 ( 가끔 남성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 볼 때면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아, 저 사람도 치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구나
상처가 많은 사람이구나 다른 관점에서 그를 이해하게 됐다
( 물론 가까이 하지는 말아야겠구나, 하고 거리를 둔다 … )
강인하고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닌 남성성과
부드럽고 따뜻한 여성성
( 남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준 ) 그 여자분이 잘 지내고,
정말 좋은 누군가를 만나 행복한 사랑을 하고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행복하고 빛나는 사랑을 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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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류미영 작가
https://www.instagram.com/monster_city_ryu_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