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째 초보 레벨인 9부, 이른바 ‘오름부’를 터줏대감처럼 지켜오고 있다. 그런 내 옆을 많은 이들이 잠시 스쳐 갔다. 어떤 이들은 7~8부인 '금강부'에서 뛰고 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보다 더 위인 '5~6부 '한라부'에서 뛰고 있다. 그들이 레벨업 혹은 퀀텀 점프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낀 게 있다면, 타고난 재능이나 운도 있지만, 나름의 '플러스알파'의 실력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A는 나보다 몇 달 늦게 탁구를 시작했다.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탁구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서로 초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함께 연습했다. 학창시절 육상을 했었다는 그녀는 탁구가 처음이었지만 빠르게 박자감을 익혔다. 초보 레벨에서 박자감과 경기운영 기술을 가졌다는 건 초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늘 상대의 공을 보고,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결국, 몇몇 기술을 배우고 익히더니 일찌감치 승급했다.
B는 A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탁구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몇 달 만에 그만둔 것을 뒤늦게 아쉬워했다. 그녀는 경기를 할 때 상대를 유심히 관찰했고, 그 결과를 다음 세트에 바로 적용했다. 상대가 어느 부분에 약한지 혹은 강한지. 그녀만의 맞춤형 경기운영법이었다. 비록 생활 체육인들이 부러워하는 초등선출(초등학교 선수출신)은 아니었지만, 회한의 마음으로 탁구에 전념하더니 그녀 역시 승급했다.
C는 남자회원이다. 몇 년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탁구장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 내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회원님, 괜찮으시면 저랑 좀 쳐주시겠어요” “저, 잘 못 치는데요”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야 배우려고 등록했습니다.” 우리는 똑딱똑딱 기본동작인 포핸드를 연습 했고, 공이 삐뚤삐뚤 나간 건 그의 공이 아니라 내 공이었다. 내가 탁구장에 가는 모든 날에 그가 탁구를 연습하고 있었고, 내가 가지 않는 모든 날에도 그는 탁구연습을 했다. 탁구를 배우기 전 생활체육으로 배드민턴을 쳤다는 그는 배드민턴 A조(잘 치는 그룹) 였다. 어느덧 승급대회 때마다 쑥쑥 올라가, 7부가 되었고, 6부를 거쳐 5부가 되었다. 최근 그가 나에게 한 말은 이렇다. “서브권을 가졌다는 건 공격을 먼저 할 기회에요. 그런데 왜 서브를 넣고 공이 돌아오면 당황하세요. 공이 돌아오는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준비해야죠” 그렇다. 경기를 위해서는 공격루틴과 계획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참 계획적인 데다 성실하고 똑똑하기까지 하다. 벌써 퀀텀 점프로 ‘한라부’인 5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K는 다른 탁구장의 오름부였다. 대회 때마다 만나는 초보라 동호회는 달라도 어느새 친해졌다. 그녀 역시 나보다 시작은 늦었다. 초반에는 내가 이길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격차는 커졌다. 큰 키에 날렵한 몸놀림을 가진 그녀는 오름부에서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브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게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코치에게 배운 동작을 경기에 적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제대로 된 자세가 몸에 익으니 동작도 예쁘고, 공격 성공률도 올라갔다. 지난 승급대회 8강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대회 우승자가 되었고 8부인 ‘금강부’로 승급했다. 그녀 역시 배드민턴 A조라고 했다. ‘초등 선수출신(초등선출)’ 다음으로 부러운 건 배드민턴 A조다. 초등선출이 될 수 없다면 배드민턴 A조 라로 돼서 다시 탁구로 돌아와야 하는 걸까.
얼마 전 그녀와 연습할 기회가 있었다. 나 역시 드라이브를 시도했지만, 공이 계속 허공으로 날아갔다. “언니, 공을 너무 빨리 치네요. 기다려야 해요.” “언니! 스윙 마지막에 상체가 들려요. 스윙 끝날 때까지 코어를 잡고 어깨를 모아주세요.” 이미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점이었다. 생각해보니 8강에서 그녀를 만나서 승급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다행히 8강에 만나서 포인트 1점을 받을 수 있던 것이리라.
초보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상대를 보면 이길 수 있을 거 같은 환상에 빠진다. 익숙한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르다. 내가 실수를 더 많이 하거나 상대가 실수를 적게 하면 진다. 공이 네트에 걸려 상대 탁구대에 들어간다거나 탁구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날의 대진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은 변수다. 하지만 실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실력 역시 내가 키울 수 있다. ‘플러스알파’는 결국 나의 영역이다. 지난번의 결과가 이번 대회의 결과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우리의 실력은 라켓에 붙어있는 고무 한 장 차이일지 모르지만, 고무의 두께는 내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결과도 바꿀 수 있겠지. 탁구란 그런 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