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산으로 가고 싶다

by 새라

당장 짐을 싸서 집을 나가고 싶다. 지리산으로. 아니 한라산이 낫겠다. 내 몸집보다 큰, 원정대나 멜법한 큰 탁구 배낭에 탁구라켓과 운동화, 유니폼을 챙기고, 땀을 닦을 수건과 무릎 보호대, 줄넘기, 근육통에 특효인 마사지젤과 붙이는 파스도 넣어야겠다. 그 어디 있을 무림의 탁구고수님을 찾아 나서고 싶다. 그 고수가 나를 받아 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지난 주말 ‘제주여성탁구연맹’에서 주관하는 여성탁구대회가 열렸다. 초보 그룹(9부) ‘오름부’ 3인 단체전 경기가 진행됐다. 우리 팀은 4강에 올랐지만 거기까지였다. 경력 초보임을 자부하던 내가 신입 초보를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졌다. 1, 2세트를 이겼다. 한 세트만 이기면 됬다. 몸에 힘이 들어갔다. 공은 계속 밖으로 나갔고, 편하게 받던 상대 서브 리시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연이어 3, 4세트를 내어주었다. 4세트까지 지고 나니,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는 하얘졌고, 숨은 가빠왔다. 상대 서브권에 점수를 내어주고 내 서브권에도 점수를 내어줬다. 5세트 점수는 점점 벌어졌다. 점수판을 볼수록 마음은 다급해졌고, 내 팔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은 채 라켓을 휘둘렀다. 폭망이었다. 3번째 주자인 내가 이기면 결승 진출이었다. 상대 팀 3명의 실력을 고려했을 때 확실한 오더(게임순서 정하기)였다. 우리 팀 누구도 내가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뭐가 문제였을까? 매일 저녁 ‘66 마법스프링 프로젝트’(66일 동안 거울 앞에서 하는 연습)에, 꾸준한 레슨에, 주말 연습까지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경기에서 지는 일은 다반사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세계 랭킹 1위 쑨잉샤도 아닌데, 이기는 게임이 있으면 지는 게임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번은 정말 달랐다. 가볍게 마무리 경기처럼 이겼어야 했다. 그런데 잔뜩 힘이 들어갔다. 상대 공 리시브도 세트마다 몇 개씩 실점이 났다. 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대의 서브가 단조로웠다는 것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서브를 이리저리 받으려다 실점한 거다. 얼마나 시야가 좁았던가. 하지만, 상대도 신입 초보라 하기엔 수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공을 내 테이블로 넘겼다. 그렇다 해도 그게 패배의 주된 이유가 될 순 없었다. 나는 공이 보이기만 하면, 누가 빼앗아 갈듯이 달려들어 공을 쳐댔다. 불안감에 사나워진 공이 상대 탁구대에 들어갈 리 없었다. 점수를 잃으면 잃을수록 나는 더 조급해졌고, 상대는 더 여유로워졌다.


그렇다. 아무래도 내가 필요한 것은 ‘마음수련’인 거 같다. 무림의 탁구고수가 아니라 산중의 심성고수를 찾아야 할 듯하다. 승부에 집착하기보다 공을 안정적으로 넘기겠다는 과정에 집중하기, 빨리 치려고 하기보다 기다렸다가 타이밍에 맞게 치기, 상대의 공을 끝까지 보는 습관 기르기, 호흡을 조절하면서 나만의 리듬 찾기. 이런 좋은 말은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누가 말했던가, 알아도 행동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고. 영원한 숙제인 것인가. 내가 해낼 수 있는 숙제이긴 한 걸까. 단순히 기술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반복해서 몸에 익히고 경기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어야 진정한 앎이 될 것을. 아! 그렇다면 마음의 문제인가? 몸의 문제인가? 나는 진정 산으로 떠나고 싶다. 산중 어딘가에 있을 마음고수를 만나 마음실력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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