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손을 놓고 있던 과목이라도 벼락치기로 외우고 문제집을 몇 번 풀고 나면 감이 잡히고 문제가 풀리다가 운이 좋으면 고득점도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게는 초집중 모드로 암기에 들어가는 과목들이 그런 효자 과목이었다. 그때는 당연하다 여겼다. 금쪽같은 시험 기간에 소중한 시간을 그 과목에 할애했으니 그 정도 점수는 나와야 했다.
벼락치기도 아니고 매일 같이 쏟아붓는 나의 탁구는 발전 속도가 참 더디다. ‘어떤 움직임이나 일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다’라는 의미의 ‘더디다’는 그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얼마 전 탁구장에 놀러 온 탁구인 한 명이 연습하고 있는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초보라는데 잘 치시네요, 삼 년은 치셨겠는데요” 나직이 개미 소리로 읊조렸다. ‘그거 두 배에요’
탁구를 배운 지 일 년 만에도, 누구는 삼 년 만에도, 또 다른 누구는 5년이 지났어도 서로 실력이 비슷할 수 있다. 운동한 기간과 실력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비례는 아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부러워할 수는 있어도, 나와 견주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격려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하지만, 실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탁구 정규과정 수석 졸업생처럼 탁구를 멋들어지게 치면서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쉬지 않고 레슨도 받고 연습도 했는데….’ 하는 볼멘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혼자만의 푸념에 밑바닥으로 떨어진 마음을 허리춤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힘껏 제자리로 밀어 올리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그렇게 나는 매일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제대로 타고 있다.
믿음이 필요하다. 아직은 지하세계에 있는 나의 실력을 빛이 보이는 곳으로 끌어올릴 믿음 말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가 떠오른다. 그는 뱀에게 물려 저승에 끌려간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서 이승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됐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내에게 설명해서도 안 됐다. 아무런 말 없이 서로에 대한 믿음만이 그들을 이승으로 나오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의심하지 않은 채, 마지막 계단까지 오를 수 있을까?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이게 맞는가?’ ‘여기까지인가?’ ‘여전히 그대로 인가?’라는 불안한 기운이 불쑥불쑥 마음으로 스며들어 의심으로 나를 덮는다. 간혹 대회에서 예선탈락을 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를 할 때면 어김없이 암흑의 기운이 나를 휘몰아쳐 계단 아래로 거세게 밀어버릴 게 뻔하다. 탁구라켓을 잡은 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쥐락펴락하며 마음을 흔들 거다. ‘탁구가 진정 나의 운동인가?’, '계속하면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라고 속삭이며 말이다.
머리로는 지금까지 이 만큼 노력했으면 할 만큼 한 거라고, 다른 효율적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탁구를 잘 치고 싶고, 탁구 칠 때의 즐거움은 나의 일상의 활력이 된 지 오래다. 이성은 말리는데, 마음은 계속 끌리는 것.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라는 파스칼의 말처럼, 탁구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 이성은 모르는 ‘마음의 이유’ 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빛이 이끄는 곳으로 나오기 전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뒤돌아봄으로써 사랑하는 아내를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한 계단씩 올라 나의 탁구를 반드시 빛이 오는 지상으로 데려오리라. 느리게 늘어도 마지막 계단까지 오를 수 있다면, 잘하고픈 나의 탁구를 위해서 절대 의심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