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 마법 스프링을 장착하라

by 새라

마법의 스프링이 운동화 바닥에 숨어 있다. 공의 길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공이 있는 곳으로 좌우, 앞뒤 마법처럼 움직인다. 스텝은 아름답고 세련되기까지 하다. 분명하다. 마법 스프링이 숨어 있지 않고선 사람들이 이렇게 날쌔고 편안하게 탁구공을 넘길 수 없다. 나만 모르는 특별한 운동화를 사람들은 신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운동화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곳으로 무심히 ’툭‘ 그렇게 공을 보내고 싶다.


내 경기 상대는 국가대표도, 실업 선수도, 탁구 고수도 아니다. 초보 그룹 오름부 회원들이다. 왜 그들의 공을 넘기기가 이토록 어려운 걸까.


초보로 지낸 지 5년이 넘어가니, 어느새 공을 받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사실 공을 받지 못해 점수를 내어주는 것도 있지만, 공을 상대 테이블로 넘기지 못해 실점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마디로, 수비도 안 되고, 공격도 안된다. 뭐가 문제일까? 가장 강력한 문제 중 하나는 공을 칠 수 있는 곳으로 제때 못 가서다. 돌부처도 아닌데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스윙법은 꾸준한 레슨 덕분에 진작에 배웠건만 아직 써먹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66일 움직이기 프로젝트.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66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껏 레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학원만 다니면 뭐 하나. 결국, 자기 주도 학습이 필요한 법이다. 10월 승급 대회를 앞두고 66일 동안 몸을 움직이는 습관을 들여 보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내게 줄 선물까지 계획해 두었다. 마법 운동화를 구할 수 없다면 쿠션감 좋은 새 운동화라도 사주기로. 이 정도면 충분히 달콤한 자가발전동기 부여 이벤트다.


첫날이다. 반바지에 가벼운 티셔츠를 걸치고,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해 매트를 깔았다. 타이머를 30분에 맞추고 거울 앞에 섰다. 오른발에서 왼발로 중심을 옮기며 몸을 비튼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골반 움직임에 맞춰 팔이 자연스럽게 뒤로 갔다 앞으로 나간다. 이번엔 스텝을 뛰면서 해본다. 계속 반복한다. 호흡은 가빠지고 땀은 이마에서 주르륵 눈가로 흘러내렸다. '꽤 지난 거 같은데', 지금쯤이면 타이머 알람이 울릴 거 같다. 이런! 겨우 10분이 지났다. 타이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니 고장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오른팔을 옆구리에 붙였다가 몸을 회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보낸다. 좌우 풋스텝을 매트 끝에서 끝으로 계속 왕복한다. 방안은 내 헐떡거리는 숨소리로 가득한데, 타이머는 1초가 1분처럼 더디기만 하다. 오늘이 첫날인데 66일 동안 이 연습을 계속할 수 있을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매트 위 연습 시간을 30분에서 20분으로 줄였다. 어차피 내가 정한 규칙이니, 내가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탁구장에 가서 연습을 할 때 1시간은 '운동을 이제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다. 2시간은 '뭔가 좀 뛰다가 말았네' 싶다. 3시간쯤 되어야 '오늘 연습 좀 했다 ‘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는 으레 4시간 이상 운동한다. 그런데 집에서 혼자 거울 앞에 서니 시간이 가질 않는다. 타이머에 자꾸 눈길이 간다. 기다리면 어련히 알람이 울릴 텐데 말이다. 어찌 됐든 시간을 줄인 덕분에 무사히 첫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10일이 지났다. 매일 20분씩 기본 스윙과 스텝을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연습이 끝나면 그 과정을 노트에 적었다. 매일 동작의 방법을 쓰고 그것을 연결해서 최종 스윙과 스텝이 나올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적고 또 적었다. 몇 줄로 풀어쓴 글을 몸으로 구현하면 간단한 기본 스윙과 스텝이 나온다. 탁구장에서 게임을 했다. 마침 오른쪽으로 공이 왔다. ’ 어째 좀 되려나?‘ 싶었는데, 공을 보자마자 팔을 쭉 뻗었다. 익숙한 '막' 동작이다. '아! 아직 66일이 안 돼서 그런 걸 거야'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을 먹는 곰 마냥 나에게도 기다림이 필요하리라.


20일이 지났다. 매일 빠짐없이 100번 이상 동작을 짚어가며 연습했다. 그 역시 참 지루한 일이다. 탁구장에서 게임을 했다. 내 오른쪽 적당한 높이로 공이 떠왔다. 공격하기 좋은 위치다. '몸을 움직여 공에 가까이 가서 골반을 살짝 비틀면서 멋있게 앞으로 스윙!'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늘 그랬듯, 몸은 그대로 있고 팔만 쭉 뻗어 냅다 휘둘렀다. 역시 20일도 무리인 거 같다. 그래, 아직 66일이 안 됐으니까.


나는 알고 있다. 어떻게 스텝을 해야 하고 어떤 스윙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66일 동안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하지만, 나는 그리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운동에 있어선 조금 특별히 느리다. 어쩌면, 내겐 그 이상 필요할지도 모른다. 66일을 두 배로 하면 좀 나을까? 20분으로 감축한 특단의 조치가 문제였을까? 아직 프로젝트 반이 남았다. 다시 30분으로 할까? 그건 힘들 거 같다. 그럼 25분은?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 마법의 스프링을 위해 그까짓 5분은 충분히 늘릴 수 있다. 지루함을 즐길 줄 아는 지루함의 고수가 돼보기로 한다. 마법 스프링을 얻을 수 없다 해도 지금보다 조금은 빠른 스텝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렇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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