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도 춤출 수 있다

by 새라

‘2025 서귀포시장배 탁구대회’에서도 나는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지난 5년, 초보 레벨에서 쓸 수 있는 탁구기술(포핸드, 백핸드, 커트, 드라이브, 스매싱 등)은 얼추 다 배웠다. 게임에 적용만 시키면 되는데 실전에서는 전혀 나오질 않는다. 공을 치려고 하면 이미 늦었다. 동작이 만들어지기까지 ‘하나! 둘! 셋’의 연속된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 공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나머지 기술이 나올 여유가 없다. 하다못해 단순히 상대 테이블로 공을 넘기는 것도, 라켓을 덮어버려 네트에 공이 걸린다. 오호통재라!

“어제 서귀포 경기 어떠셨어요?” 레슨 코치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상대에게 맥없이 무너지며 허탈해진 심정을 이야기했다. 상대가 계속 같은 서브를 주는데, “기계처럼 계속 같은 방법으로 공을 받았어요. 상대가 몸 쪽으로 공을 보내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그냥 배로 받았고요!, 장승처럼 팔만 휘둘렀고, 머리랑 다리, 팔이 다 따로 놀았어요” 주절주절 깨알같이 씩씩거리며 나의 이야기를 마구 해댔다.


“리듬의 부재네요.” 그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겠지만, 눈을 떠도 공이 안 보이는 건 ‘리듬’이 없어서예요. 하얀 공이 날아오는 것이 보이는데도 몸이 늦게 반응하는 건 리듬이 없어서죠. 리듬이 없이는 공을 봤다고 할 수 없어요. 공은 리듬으로 보는 거예요” 그는 자세를 낮추고 발끝에 힘을 주며 몸을 좌우로 비틀며 시범을 보였다. 상체와 하체가 회전하며, 오른발에서 왼발로 중심이동이 되자 자연스럽게 리듬이 느껴졌다. 앞꿈치에 실린 힘으로 반동을 주며 몸에 회전을 넣으니, 동작의 끊김이 없었다. 알면서도 하지 못했던 그 박자였다. “리듬을 타면서 공을 보면 공이 오는 방향, 길이, 시간, 속도 모든 것을 공에 맞출 수 있어요. 그래서 공이 오는 곳으로 다리가 움직이고 몸이 따라갈 수 있는 거예요. 리듬 없이 서서 공을 보면, 눈은 공을 보고 있지만, 공은 이미 내 앞에 와있고, 몸은 공을 따라갈 수 없게 되죠. 결국, 리듬 없이는 어떤 기술을 배워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돼요”


강평이 끝나고 레슨이 시작됐다. 오늘의 미션은 ‘리듬’ 찾기. 코치가 왼쪽, 오른쪽 불규칙으로 공을 주면, 스텝의 끊김 없이 공을 치는 거다. 공을 잘 봐야 라켓이 허둥대지 않는다. 눈은 코치의 라켓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앞꿈치에 힘을 주며 바닥을 눌렀다. 공 한 개씩 초집중 모드다. 그는 공을 오른쪽, 왼쪽으로 주는가 싶더니, 짧게도 주고 길게도 줬다. 어떤 때는 한 박자 늦게 공을 보냈다. 나도 모르게 오른 다리를 조금 더 눌렀다. 그리고 시선이 공을 기다렸다. “잘 보시는데요. 거의 성공률이 98%에요. 일부러 박자를 늦췄는데도 잘 맞추셨네요.” “계속 움직이면서, 공을 보려고 애썼어요.” “맞아요. 애쓰니까 보이는 거예요. 보려고 하면 보여요”


장승처럼 굳어있던 내 몸과 마음이 서서히 풀리고, 모래 해변에서 쪼그라들었던 비치볼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10월 승급대회를 앞두고 어제의 경기는 그저 좌절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맹’하게 서 있다가 그냥 돌아온 건 아닌지, 속이 타들어 갔다. 마치 정체 구간 한복판에 나 홀로 갇혀 버린 거 같았다. 그때 코치가 말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리듬을 장착하는 건 어렵지만, 그 리듬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잖아요. 어쩌면 가장 단순하고 쉬운 해답일 수 있어요”


나는 누구와도 신나게 게임할 수 있는, 라켓만 잡으면 탁구대를 가볍게 누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더라도, 레슨 같은 친절한 게임이 아니라 가슴이 뛰는 진짜 게임을 하고 싶다. 늘 유쾌하고 당당한 나지만, 라켓만 잡으면 작아지는 나를 이제는 넘어서고 싶다. 탁구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빛나는 별로 서고 싶다. 가장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한 것, 리듬 찾기.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별이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게 아니듯, 너의 노력도 지금 당장 눈에 띄지 않을 뿐, 언젠가는 분명히 빛날 거야 - 어느 고등학교 앞 현수막 - ’


장승도 춤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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