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직은 2026년

by 새라

'초보 탈출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직이라고!' 2023년 9월에 내가 쓴 글 제목이다. 그리고 2023년, 2024년, 2025년이 지나 며칠 전 2026년을 맞이했다. 드넓은 온라인 세상에 '아직이라고!'를 외쳤건만, 그 '아직'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초보 그룹인 9부 오름부다. 아직이라는 단어가 참이나 모호한 단어라는 것을 절실히 실감하는 순간이다. 저녁 시간 아이에게 씻었는지 물어보면 “아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마도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는 양치하고 씻을 것이다. 잠자기 전까지라는 기한이 아이를 움직이게 한다. 주말 설거지 담당인 남편에게 설거지했느냐고 물어도 역시 “아직”이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 전에는 개수대에 쌓여있는 그릇이 말끔히 사라질 거란 걸 안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초보 탈출의 기한은 언제인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12층 부부를 마주쳤다. 유니폼 위에 점퍼를 걸치고, 커다란 탁구가방을 둘러멘 나를 향해 묻는다. "운동 가시나 봐요? 잘 치시죠? 이제 선수급 되셨겠는데요" 어째 그 부부는 탁구장에 갈 때 자주 마주친다. 환하게 물어오는 부부에게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시간 동안 타들어 가는 내 속을 다 말하기엔 역부족이다. "그건 아니고요, 탁구가 쉽지가 않네요. 아직 초보예요" 나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말끝에 묘한 여운이 남는다. 하지만, 나의 아쉬운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내가 고수가 되었다는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 눈치다. '내 표정이 너무 밝았나?'


난 탁구가 좋다. 탁구장 가는 길이 즐겁다. 운동 후 흘리는 땀이 좋고, 함께 치는 사람들이 좋다. 여전히 초보 그룹인 오름부(9부)이고, 금강부(8부)로 승급하기 위해 몇 년째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래도 탁구가 좋다. 승급을 위한 기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승급 포인트를 얻을 만큼만 잘 치면 된다. 학창 시절 탁구를 접했던 사람들은 1년 만에도, 운동신경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빠르게 익히고 실전에 적용해 2~3년 안에도 승급한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40대에 탁구를 처음 배운 직장맘이다. 하지만 ‘내가 10대에 시작했다면 달라졌을까’라고 생각해 봐도 그리 긍정적인 대답은 할 수 없을 거 같다.


요즘 나는 자칭 동계훈련 중이다. 동계훈련이라 해봐야 늘 하던 레슨과 연습이 전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잘하고 싶은 한 동작을 집중해서 연습한다는 것. 요즘은 겨울에도 철없이 꽃은 피지만, 철든 꽃들이 피는 봄이 오면 내가 연습한 동작이 자연스레 몸에 배서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연습과 실전의 경계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탁구장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해 더디게 실력이 느는 나에게 고수들은 말한다. 시간만으로 실력이 자동으로 늘지는 않는다고. “같은 서브를 매번 다른 동작으로 한 시간씩 연습한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아요. 몇 개를 넣어도 생각하면서 일관성 있게 동작을 맞춰가며 연습하세요.” “게임을 할 때 공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공이 잘 들어간 이유와 들어가지 못한 원인을 찾아서 분석하고 개선해야 실력이 늘 수 있어요.”


초보 생활 몇 년 차를 지내고 나서야, 탁구장에 시간을 쏟아부은 이후에야 그 말들이 조금씩 귀에 들어온다. 실력은 운동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경험을 돌아보고 분석하는 생각의 밀도에서 쌓인다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씩 공만 치다 오면 땀은 나겠지만, 실력은 남지 않는다. 나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그 실수를 수정하고, 다시 해보는 과정에서 실력은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성장한 나를 발견하겠지. 새로운 2026년이 기대되는 건 '아직'이 어느 날 문득 '이미'가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아직‘의 기한은 202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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