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그렇다면 이런 말도 가능할까. ‘한번 오름부는 영원한 오름부’
예전에 오름부(탁구 초보그룹)였다가 금강부로 승급한 탁구장 언니와 동생에게서 내 생일 시즌에 맞춰 연락이 왔다. “좀 있으면 네 생일이네, 이번 주말 저녁에 시간 어때?” “좋아요” 여러 맛집 링크가 단톡방에 올라오더니 우리는 화덕 피자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우리의 인연은 2022년 오름부 폭파를 목표로 연습할 때부터 시작됐다. 나보다 4살 많은 언니와 나보다 10살 아래인 동생, 우리 셋은 참 잘 맞았다. 주말 아침이면 동생은 꼬맹이 딸아이와 함께 탁구장으로 출근했고 우리가 연습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가 깔아준 매트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가끔은 기계연습을 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 이겨라!”를 외쳐 우리를 웃음 짓게 했다. 고수 회원들은 오가며 우리의 공을 받아주기도, 서브에 힘을 싣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주중, 주말 모든 날이 연습 날이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누군가는 “우리 탁구장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건 오름부야. 연습이 국대급이야”라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국가대표, 지역대표도 아니었다. 초보그룹인 ‘오름부’를 폭파해 세 명이 동시에 금강부로 올라가는 거였다.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시작하면 제주에서는 초보그룹을 ‘오름부’라고 부른다. 우리는 ‘초보’이고 싶지 않은 탁구인이었다.
2년 후인 2024년 5월, 동생이 승급했다. 그리고 다음 달 언니가 승급했다. 그리고 2026년 2월 지금, 나는 여전히 오름부다. 그때 난, 그해 있을 승급대회에서 곧 그녀들을 따라 금강부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단 몇 달만 버티면 그녀들과 함께 금강부에서 뛸 수 있을거 같았다. 그런데 승급대회에서 낙방하고 마음이 탁구화 바닥에 붙어버렸다. 먹먹해진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마음을 다시 잡고 가슴 위로 올리고 나면, 다시 대회에 나가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대회가 내 앞을 지나갔다. 오기가 생겼다. ‘세상에 불가능한 게 어딨어.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늘 이런 마음이지만, 마음은 매번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래, 열심히 하면 될 거야. 아니야 넌 안 돼. 열심히 한다면서 왜 발은 바닥에 붙어 있는데. 너 못 움직이잖아’
메뉴판에 나열된 재료를 상상하며 최대한 맛있어 보이는 피자와 샐러드, 파스타를 주문했다. 메뉴를 고르며 재잘대는 우리는 그 시절 오름부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가 승급을 위해 열탁하는 사이 동생은 둘째를 가졌고 출산도 했다. 언니는 새롭게 ‘골프’를 시작해, 나이스 샷을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흘렀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요!” 그녀들은 귀여운 종이상자를 열었다. 하얀색 미니 하트 케이크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핑크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는 금강부!’ 나만큼이나 나의 승급을 바라는 그녀들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감사함에, 그리고 아직 자신 없음에. “고마워! 당연하지, 금강부 가야지.” “5월에 승급대회 있다면서요? 그럼 우리 5월에 언니 승급 턱 먹는 거예요? 5월에 우리 또 만나요”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할 텐데. 벌써 자신이 없어진다. 아직도 지는 게 일상인데 될까? 여전히 성급한 플레이인데 될까? 발보다 팔을 먼저 뻗는데 될까?
“5월에 언니가 쏘는 거죠?” 동생이 다짐받듯 다시 묻는다. “물론이지, 5월에 내가 쏜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내가 자신 있나? 말을 뱉고 보니 그래야 할 거 같다. 그까짓 것,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닌데. 금강부쯤이야. 그래 올해는 금강부! 공격이 안 되면 수비라도 하자. 어찌 됐든 금강부로 가보자. 다시 뛰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