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보다 고소하게

나의 벚꽃 훈련

by 새라

동호회 밴드에 공지가 떴다.

‘4월 토요 탁구 훈련 모집’

뭐지? 빠르게 손가락을 올리며 공지를 읽어 내려갔다. 매주 토요일 10:30~12:30, 관장과 코치와 함께하는 기본기 훈련이란다. 4주 동안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선착순 10명!

절호의 기회다. 지금까지 이런 공지는 없었다. 번개같이 글자를 찍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저도 신청합니다.’ 휴~ 순위에 들었다.


불판 위에 가지런히 노릇노릇한 장어가 있다.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과 만남이다. 앞뒤로 구워진 장어를 옆으로 세워가며 꼼꼼히 익혔다. 상추 위에 깻잎을 깔고 장어와 소스에 버무려진 생강채를 얹었다. 두 손으로 동그랗게 싸서 한 입에 쏙 넣었다. 아! 달달하고 고소하다. 순간, 머릿속에 탁구공이 지나간다. ‘내일 첫 훈련인데 괜찮을까? 밥 많이 먹으면 뛸 때 힘들 텐데.’ 기말고사 전날처럼 걱정이 밀려왔다. 잘 치는 회원들 틈에서 어울릴 수 있을까? 시험 전날의 긴장감은 몸에 각인되는 것인지, 머릿속은 온통 훈련 생각뿐이었다.


커튼 사이로 아침 해가 들었다. 10시 30분부터 시작이지만 적어도 1시간 전에 미리 가서 몸을 풀고 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모든 일상이 그러하진 않지만 적어도 탁구만큼은 그렇다. 오늘을 위해 어젯밤 화장대 위에 곱게 접어둔 새 유니폼을 입었다. 기말고사 전날의 떨림과 수학여행 전날의 들뜸이 뒤섞여 있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탁구장으로 들어왔다. “언니! 일찍 오셨네요” “응, 몸 풀고 준비해야지. 이런 훈련 처음이잖아.”, “그러게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스트레칭 담당인 건 아세요?” 작년에 우리 동호회로 들어온 동생이 경상도 억양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어떻게?” “저 체대 나온 여자잖아요. 관장님이 스트레칭 맡아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역시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훈련이다.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체대 가고 싶다.


셀프 몸풀기에 들어갔다. 탁구 기계에 포핸드 방향으로 기본공 50개를 세팅했다. 금세 끝났다. 횟수를 늘리고, 백핸드도 이어갔다. 땀이 난다. 시작부터 진을 빼면 곤란하다. 연습실 밖으로 나오는데 센스 만점의 탁구장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누나! 신상 유니폼 입으셨네요? 벚꽃 느낌도 나고 산뜻한데요. 잘 어울려요” “고마워, 훈련 첫날이잖아. 느낌 있게 하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괜히 움츠러들었다. 몇 년째 초보 그룹에서 맴돌고 있는데,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까.

라켓과 공이, 리듬을 타는 순간이.


훈련이 시작됐다.

관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탁구대를 가운데 두고 체대 나온 동생 주위로 사람들이 빙그르르 모였다. 그녀의 시범에 맞춰 하나, 둘 박자를 맞추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허리를 접고 팔을 힘껏 뻗어봐도 내 손가락은 발등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런 우리를 보며 스트레칭 코치가 말했다. “다 안 닿아도 괜찮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모자와 완장만 있었다면,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은 누구라도 그녀를 군대 조교라 했을 것이다. 뻣뻣함으로는 자신 있는 나인데, 주위를 살펴보니 나만큼이나 자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트레칭 코치가 성큼성큼 관장에게로 다가갔다.

“관장님! 팔을 더 당기셔야지요” 그녀가 관장의 팔을 쭉 당기자, 짧은 비명이 탁구장에 울렸다 “아!”


오늘은 나의 탁구 인생에 위안이 되는 날이다. 탁구 실력과 유연성은 정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동작 하나가 끝나면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며, 그렇게 스트레칭 시간 20분이 지났다. “훈련은 다 끝난 거 같은데요. 땀은 다 흘렸어요” 누군가의 말에, 조금 전까지 진지했던 분위기가 금세 풀렸다.


“지금부터 1교시 훈련에 들어가겠습니다. 공지해 드린 대로 오늘은 교류전이 예정돼 있어서 1교시만 진행됩니다. 파트너는 랜덤으로 돌아갈 겁니다. 관장이 오른쪽부터 두 명씩 팀을 꾸렸다. 관장의 왼쪽에는 내가 있었다. 나의 첫 파트너는 관장이 되었다.


포핸드 연습이다. 공을 대각선으로 보내야 한다. 공이 자꾸 가운데로 간다. 관장은 말없이 탁구대 모서리를 툭툭 두드렸다. 스윙을 좀 더 길게 가져갔다. 그제야 공이 관장 가까이에 떨어진다. 매번 그렇게 공을 보내려고 하니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이번에는 쇼트 연습이다. 이번에도 공을 대각선으로 보내야 한다. 늘 하던 건데, 오늘따라 자세가 흔들린다. 라켓을 쥐고 있는데 손과 라켓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내가 보낸 공이 자꾸 탁구대 밖으로 나간다. 관장은 말없이 공을 주우러 간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간다. 다시, 또 나간다. 그제야 알았다. 라켓을 앞으로 보내지 않고, 위로 들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온 신경이 공을 맞는 순간에 쏠린다. 땀은 이미 흘러넘친 지 오래다. 1교시가 끝났다. 오늘의 훈련이 끝났다.


탁구장을 나왔다. 바람에 연분홍 벚꽃잎이 눈처럼 흩어진다. 봄의 여제, 벚꽃잎이 떨어지고 나면 연두 연두한 초여름이 오고 어느새 초록 초록한 여름이 올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렇게 계절은 지나가고,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해가 바뀌어 그 계절이 다시 돌아와도 올해의 봄은 지난해의 봄과 같지 않다. 내 탁구의 계절도 그렇게 바뀌길 바라본다. 오늘 흘린 나의 땀이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벚꽃잎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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