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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Dec 21. 2021

16년차 워킹맘의 정당한 두 집 살림

“애들은 엄마 없이 어떻게 지내니?”

“남편이 살림하고 애들도 챙기는 거야?”     


내가 얼마 전까지 자주 받던 질문이다.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파견 연수로 서울에서 지냈다. 연수원에서 제공한 숙소는 난방도 잘되고 보안도 철저했다. 문제는 제주에 남겨진 가족들이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아이를 돌보는 살림남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평범하다. 평범함의 정의는 애매하지만, 그럭저럭 결혼 16년이 넘으면 가정에서 역할이 정착되고 익숙해지는 시기다. 서울 파견 연수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6개월간 홀로 서울에서 지낼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상당한 배려였다. 그는 일정 부분 나눠왔던 집안일과 아이들 돌봄을 혼자 하겠다고 했다.      


내가 떠나기 전 남편은 말했다. “당신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는 없을 거야. 우리 집에서는 엄마의 존재감이 별로 없잖아.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도무지 농담인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동안 직장인 엄마로 나름 바쁘게 움직인 내가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눈치다. 집안일은 해도 티가 안 나는 법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행이 결정된 후 “엄마! 안 가면 안 돼?”라는 막내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처음 일주일은 매일 통화하며 일상을 물었지만, 한 달쯤 지나자 막내의 얼굴은 영상통화로도 보기 힘들었다. 다들 내가 없는 공간에 익숙해진 것일까? 내가 너무 독립적으로 키웠나? 정말 존재감이 없나?   


서울에 올라와 한 달 만에 집에 내려갔을 때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보기는 처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설레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편도 보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안은 꽤 정리돼 있었다. 씻어놓은 그릇은 엉성하게 쌓여 있긴 했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깨끗하게 비우고 엄마를 맞을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주방 기구들이 눈에 거슬렸다. 주방 정리 정돈을 시작하자 엄마의 존재감은 시각적으로 확실해졌다. 주방 한쪽에 쌓인 세척 그릇, 냄비, 빈 반찬통, 믹서기, 조리도구들을 제자리에 넣고 분주히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으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이제 9시다! 모두 핸드폰 함에 넣고 치카치카 하자!”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취침을 위한 마무리 멘트를 날려주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동안 남편은 살림남의 기질을 발휘했다. 내가 없는 첫날 착즙기를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던 많은 귤을 주스로 변신시켰다. 서울에 도착한 첫날 영상통화에서 남편은 감귤 주스를 자랑했는데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감귤 주스를 보란 듯이 마시고 있었다. 남편은 퇴근 후 거의 약속을 잡지 않았다. ‘백주부’를 따라서 아이들 입맛에 맞는 저녁식사도 직접 만들었다. 엄마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세 사람은 내가 없는 사이 더 가까워진 거 같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도 서로를 비난하며 빈정거리고 경멸하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 7~8년쯤 되었을 때다. 항상 나를 쫓아다니는 5살짜리 아들이 물었다. “엄마! 우리 버리고 가버릴 거야?” 정신이 번쩍 났다.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던 거다. 부부 문제로 어린 아들에게 걱정을 안겼다니, 화가 났다. 늘 불안해하며 엄마 옆에 붙어있던 아이가 이해됐다. 그때의 먹먹한 마음이 떠오른다. 그 시절은 상대방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고 온통 기준에 미달한 것처럼 보였다. 서로에 대한 비교는 우리 부부를 점점 더 불행하게 했다. 신랄한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후벼 파며 누가 더 생채기를 많이 남기는지 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상대방 자존심을 밟으며 인격 모독의 대화가 오가고 그 속에서 다시는 보지 말아야겠다 결심한 때이기도 했다.   

  

이제 그 시기는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결혼생활의 만족도를 U자에 비유한다. 높은 기대감으로 출발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해야 할 일에 치이고 서로 실망하는 일이 많아지면 만족도는 어느새 바닥까지 내려온다. 그 상태가 일정 시간 지속하기 때문에 만족도는 V자로 반등하지 않고 U자가 된다. 그때가 되면 부지런히 발을 저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버텨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 남편을 위해서는 양배추 된장국을, 된장국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있으려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당신이 오니까 우리 집이 안정감이 있는 거 같아.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야." 이에 질세라 "왜! 지난번에는 존재감이 없는 엄마여서 없어도 티도 안 날 거라며" 큰소리로 대꾸했지만 내 얼굴은 웃고 있었다. 소원하지는 않지만 다정할 것도 없던 우리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누다니.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서로를 감사하게 느끼고 있었다.     


처음 만날 때는 음식 취향도, 자상하게 설명하는 말투도, 외모도, 성격도 그 자체로 다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남편의 음식 취향에도 '왜'라는 질문이 따라왔고, 생활 습관조차 거슬리기 시작했다. 음식을 꼭꼭 씹어먹는 모습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자상하게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결혼생활 어느 시점부터 모든 게 불만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 후 찾아온다는 U자의 바닥이었다.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을지는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에 달려있다. 묵묵히 지켜내는 것. 물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을 쉼 없이 젓는 것. 이것보다 내가 버티고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없는 삶은 지금보다 행복할 게 없었다. 혹시 자신이 지금 U자 바닥에 있다고 생각되면 질문을 던져 보자. 배우자가 없이 지내는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 일지. 그 모습이 유쾌하지 않다면 아직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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