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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May 21. 2022

제주에서 딸기 먹는 법

5월은 수확의 계절

제주시 아라동은 예전부터 딸기 축제를 할 만큼 딸기밭이 많다. 그래서 아라동 딸기는 ‘아라주는 딸기’라고도 부른다. 마트에 가면 사계절 볼 수 있지만 사실 딸기는 봄의 여왕이다. 봄의 절정인 5월이 되면 아라동 딸기밭에선 노지 딸기가 나온다. 길거리 곳곳에서 농민이 당일 수확한 딸기를 판매하기도 하고 아라동 행사로 직거래 장터를 열기도 한다. 진한 딸기향이 사라질 때쯤 여름이 찾아온다.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자란 딸기는 온실 속에서 자란 딸기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아라주는 노지 딸기는 속이 꽉 차고 단단하다. 밋밋한 바나나가 아니라 작지만 달면서 맛이 진한 몽키바나나처럼 튼실하다. 모양이 반듯하고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속살이 빨갛고 과육이 많다. 반면 하우스 딸기는 예쁘고 달콤하지만 가볍고 맛이 엷다. 노지 딸기는 새콤함과 달콤함이 진하게 어우러져 맛이 풍성하고 깊이가 있다.     


생딸기를 믹서기 대신 손으로 조물딱 거리며 으깨면 ‘딸기 주물럭’이 된다. 한 손에 딸기 알을 잡고 뭉그러뜨리면 하우스 딸기는 과육보다 물이 많아 주물럭 색깔이 선명하지 않지만 아라 주는 노지 딸기는 수분보다 과육이 많이 잡힌다. 과육이 많으니 주물럭 색깔도 진하다. 딸기꽃과 벌들의 만남 덕분인지 그 향도 진하다. 아쉽게도 매력 덩어리 노지 딸기는 점점 재배면적이 줄어들면서 가격도 올라갔다. 보통 4kg 한 상자에 삼만 원 내외지만 이 시즌에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여왕이기에 이 정도 대접은 필요하다.     


5월이 되면 여름내 먹을 노지 딸기를 몇 광주리 산다. 일단 시작하면 딸기는 바로 손질해야 하기에 주말을 끼고 사야 한다. 우리 가족은 바빠진다. 식탁에 둘러앉아 딸기 꼭지를 따고 큰 다라이에 딸기를 놓는다. 나는 싱크대를 오가면서 꼭지딴 딸기를 씻고 물기를 뺀다. 알이 작은 것들만 모아 일회용 비닐 팩에 고르게 넣어서 평평하게 한다. 이것이 냉동 알알이 만들기다. 평평한 딸기 비닐 위로 다시 다른 딸기 비닐을 얹어 넣는다. 냉동실 한편이 온통 딸기로 가득 찬다. 알이 굵은 것과 물러진 것은 손으로 으깬다. 으깬 생딸기에 설탕을 넣어 약간 달달하게 한다. 며칠 내 금방 먹을 것은 통에 담아 냉장실에 담고 나머지는 비닐 팩에 국자로 적당히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이때도 평평하게 넣어야 그 위로 많이 쌓을 수 있다. 적어도 초가을까지는 먹어야 할 아이들 간식이라 허투루 할 수 없다. 역시 제일 바쁜 건 나다. 냉동실에 가득 찬 딸기 알알이와 주물럭을 보면 가을까지 버틸 먹거리 장만에 흐뭇해진다.      


냉동실에 들어간 딸기는 수시로 2차 작업에 들어간다. 냉동된 주물럭 비닐을 하나씩 꺼내 잠깐 풀린다. 그다음 조각조각 썰어서 통에 담아 다시 냉동실에 넣는다. 딸기우유가 먹고 싶으면 아이들은 주물럭 몇 조각을 꺼내 우유에 넣으면 된다. 냉동 알알이를 하나씩 꺼내 입속에서 녹여 먹으면 아이스크림이 된다. 냉동 알알이와 우유를 믹서에 넣고 갈면 딸기 쉐이크, 요거트에 넣어 먹으면 딸기 요거트로도 먹을 수 있다. 딸기와 바나나를 섞어 딸바 음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초가을까지 아이들은 수시로 냉동실을 열며 딸기로 더위를 식힌다.  

   

지금은 아라동에 아파트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흔하게 보였던 딸기밭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도심지가 되어버린 아라동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건 아마도 나이 든 부모 세대들이 마지막이 될 거 같다. 금싸라기가 된 딸기밭에 딸기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자녀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5월이 되면 나는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은 딸기밭을 기웃거린다. 제주에서 5월은 여름내 먹을 딸기를 장만하는 수확의 계절이다.      


   

2022년 아라주는 딸기 장터 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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