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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n 24. 2022

제주바당 앞자리는 내꺼

우리 집은 부부 방, 딸 방, 아들 방 이렇게 방이 3개다. 거실을 나눠서 공간을 만들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아쉬운 마음에 안방에 책상을 들여놨지만, 공동의 공간이다 보니 안방을 혼자 차지하기란 쉽지 않다. 신랑이 방에서 쉴 때면 불빛이 방해될까 나는 자발적으로 거실로 간다. 서로 퇴근 시간이 비슷해 나만의 시간도 비밀공간도 기대하기 어렵다.      


직장에서는 내 의자 바로 뒤에 회의용 6인용 탁자 2개가 기다랗게 놓여있다. 등 뒤에서 수시로 회의가 열린다. 나의 듀얼 모니터는 업무용인지 회의용인지 구별이 안 된다. 회의 탁자에서 내 모니터에 빔을 띄워서 회의를 한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바로 보인다. 부서에서는 팀별 협의나 과장님과의 업무협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 회의가 시작되면 슬그머니 모니터에 띄운 창을 내리고 서류를 꺼내 읽는다. 회의가 길어지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만의 티타임을 갖는다. 아쉽게도 티타임은 짧고 회의는 길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사람들이 있는 시간엔 그들과 함께다. 나만의 시간이 생겨도 나만의 공간은 없다. 나의 비밀공간은 다른 데 있다. 집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가면 바다와 만난다.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종종 나의 비밀공간이 된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시선이 멈추는 곳에 차를 세운다. 차 안에서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앞에 보이는 건 광고에나 나올법한 망망대해에 고깃배까지 저 멀리 보이는 바다다. 어떤 날은 하늘과 바다가 어디서 만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둘은 맞닿아 있다.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이 여유로움과 황홀함은 신선이 따로 없다. 마음이 들뜨고 즐거울 때 바다를 바라보며 저 멀리 고깃배를 보자면 확신에 찬 자신감이 솟아난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그곳에 가면 크게 보이는 일들도 결국은 사소한 일 중 하나일 거라는 단순한 결론에 이른다. 내 생각을 넓게도 하고 깊게도 하는 마법의 공간이다.

     

바다의 향기를 눈으로, 몸으로 느끼고 나면 다시 차 안으로 들어온다. 운전석 좌석을 뒤로 최대한 밀어 넓게 하고 다리를 뻗어본다. 아직 따뜻한 커피가 남아 있음에 감사하며 깊게 숨을 내쉰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걸 누가 알까? 난 가끔 아무런 약속 없이 바다와 만난다. 그와 함께 차를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도 한다. 아무 말 없이 늘 자리에 있지만, 그는 나에게 답을 준다. 그곳에서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묵묵하게 나를 지켜볼 뿐이다. 그 어떤 간섭도 방해도 없다. 그를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제주바당이 나의 아지트다. 나는 제주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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