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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Jul 17. 2022

어두운 숲 속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버스 노선이 얼마나 잘돼 있는데요, 제주 버스가 최고라니까요” 직장 회식이 끝나고 집에 어떻게 갈까 망설이는 나에게 아직 버스가 있다며 같은 방향에 사는 후배가 말했다.      


제주시는 행정구역으로 보면 애월읍, 한림읍 등 읍면 지역을 포함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연동, 노형동 등의 제주시 동지역을 흔히 제주시라고 한다. 대형 마트나 병·의원, 학교들이 동지역에 집중돼 있다 보니 인구밀도도 높다. 동 지역은 대부분 1시간 이내에 해결할 수 있는 거리기에 운전할 여건이 된다면 굳이 시간을 맞춰 버스를 타기보다 자가운전을 선호한다. 대도시보다 주차가 여유롭다는 것도 한몫한다. 나 역시 바쁜 아침 시간 50분 이상 걸리는 버스 출근 대신 25분의 자가운전을 선택했다.      


득달같은 후배의 가르침으로 핸드폰에 교통카드를 등록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핸드폰을 요금 리더기에 뎄다. ‘1150원’. 안도하며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버스 안쪽으로 들어갔다. 뒷자리에 자리를 찾아 앉고 차창 불빛을 바라보았다. 어둠이라는 도화지 속에 반짝이는 간판과 조명이 차분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하나둘 사람들이 내리고 붐비던 마지막 버스에는 이제 열 명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남았다. 에어컨 바람에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 버스 안이 더 한산하게 느껴졌다.     


‘집까지 어떻게 갈까?’ 차창을 보며 동선을 생각했다. 정류소에서 집까지 15분은 더 걸어야 한다. 정류소 바로 앞, 공원을 관통해서 간다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늦은 밤 수풀이 우거진 공원을 가로질러 갈 자신은 없다. 공원을 빙 돌아 큰길로 걸어가야겠다 마음먹고 하차 벨을 눌렀다. 남학생 한 명이 먼저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팩을 맨 짧은 머리의 남학생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성큼 공원길로 들어섰다. ‘어! 공원으로 가려나 보다’ 생각이 먼전지 내 발이 먼저였는지 큰길은 안중에도 없고 기다렸다는 듯 어두운 숲 속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었지만, 숲은 어두웠다. 온통 나무 천지라 평상시 공원의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같은 자리를 맴돌기 딱 좋았다. 옆쪽 큰 나무 그림자가 곧 나를 덮칠 듯 무겁게 다가왔다. 급습한 공포에 앞서가는 학생을 바싹 좇았다. 내 인기척을 들었는지 학생이 잠깐 뒤를 보더니 더 빠르게 앞으로 걸었다. 행여 학생을 놓칠세라 추격하듯 뒤쫓았다. 이 숲을 빨리 벗어나야 했다. 학생은 다시 살짝 뒤를 보더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무줄기가 쭉 늘어나 나를 집어삼키기라도 할 듯 앞만 보며 그의 뒤를 쫓아 달렸다. 내가 달리기를 멈춘 건 가로등이 조용한 주택가를 비출 때쯤이다.    

  

학생은 나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듯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숨을 돌리며 천천히 주택가를 지나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만치에 그 학생이 우리 아파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점점 아파트에 가까워진 학생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 우리 아파트에 사는구나’ 그제야 어둠 속 마스크를 한 사람이 마구 그를 쫓았으니 많이 놀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있었다. 빠르게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다시 열렸다. 안도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학생이다. 내가 따라온 학생, 정확히 말하면 7층에 사는 꼬마 김병만이 엘리베이터에 있었다. 아파트 입주 때부터 봐왔던 7층 아이다. 키가 크진 않지만 탄탄하고 밝은 성격의 똘망똘망한 그 아이를 우리 집에서는 김병만 닮은 아이라고 불렀다. 

“어, 너구나!”

나도, 아이도 웃음이 스쳤다. 어색함에 말을 걸었다.     

“학원 갔다 오는구나? 요즘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지?”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중3 딸아이가 생각났다. 대부분에 학교가 비슷할 터였다.

“시험요? 혹시 수능 말씀하시는 건가요?”     

‘수능?’, 꼬마 김병만이 벌써 고3이라니. 하긴 최근에 언제 이 아이를 봤는지 기억도 안 났다. 언제부턴가 아파트에서 아이와 마주치는 일이 줄었을 뿐이다.


“수능? 너 벌써 고3이니? 아유, 벌써 그렇게 됐구나!”

아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 고3 아닌데요, 재수하는데요.”     

“아!” 짧은 한마디와 함께 멋쩍게 웃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7층에 멈췄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성 바른 마지막 말을 남기고 꼬마 김병만은 유유히 사라졌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벌써 10년이다. 흰머리가 성가셔 염색했고 얼마 전 새치 샴푸도 샀다. 되돌아보니 씩씩하게 인사하며 아파트 곳곳을 누비던 꼬마가 보인다. 난 꼬마 김병만을 따라 어두운 숲이 아닌 아파트 놀이터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들렸던 놀이터. 미끄럼틀을 타며 엄마의 환호를 받던 아이들, 그 옆에서 노랑, 빨간색의 어린이집 가방을 하나씩 들고 자기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 아빠들이 보인다. 귀엽고 재롱 많던 우리 아이들은 이제 중3, 중1이 되었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지금’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지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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