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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Oct 30. 2022

생각보다 괜찮은 가족여행


“누나! 오늘 숙소는 어떤데야?”

“대가족 14명이 쓰려면 독채여야 하는데 이미 주말 예약이 다 찼더라. 다행히 예약 취소한 곳이 있어 바로 결정했어. 방 3개 독채인데 화장실 겸 욕실이 넓지 않데.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자야 해서 불편할 수도 있을 거야. 1박이니까 함께 지낸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할 거 같아”


전주 여행은 처음이었다. 서울에 살던 여동생이 몇 달 전 전주 근처로 이사 갔기에 친정 가족들이 모두 전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2박 3일, 3박 4일 가족별 일정은 달라도 1박 2일은 부모님과 1남 3녀가 함께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우리가족은 1박 2일 일정으로 전주에서 가까운 군산행 비행기를 탔다.


한옥마을 한복판 커다란 대감집 대문이 떡 하니 있었다. 달빛과 간판 조명이 어우러진 저녁 시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택은 디귿형이었다. 기와로 덮혀있는 한옥에 격자무늬 미닫이문 위에 있는 따뜻한 조명이 마루 입구와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에 기와의 곡선이 더 도드라져 고택의 위엄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했다. 마당 잔디는 10월 가을날 봄날의 설렘을 지닌 연둣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낮은 계단이 있고 문 옆으로 길게 나무 마루가 있었다. 문 바깥쪽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독립된 방이 있고 그 옆으로 길게 작은 방 2개와 넓은 마루가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포근하게 다가온 숙소에 다들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늦은 시간이라 생각하며 들어온 숙소였지만 토요일 밤 전주한옥마을 거리는 불야성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대문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추억의 뽑기를 하며 모양을 맞췄다. 물오리를 건져 오리 아래 적힌 숫자 상품인 안마봉도 받았다. 튀김가루를 묻혀 튀긴 오징어 한 마리를 긴 꼬치에 꿰어 입가에 흔적을 남기며 먹었다. 한옥마을 거리 한편에선 음악과 함께 빠른 비트의 노래가 울렸고 주위에는 어둠과 조명 사이에 박힌 작은 무늬처럼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오롯이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지만, 사실 여행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박을 알아보는 사이 친정엄마가 넘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출발까지 몇 주 남았지만 그래도 걱정이었다. 출발 일주일 전 또 문제가 생겼다. 전주에 사는 여동생이 넘어져서 발목을 다쳤다. 별거 아니라는 말에 일정대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출발 이틀 전 그녀가 퇴원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되었다.


모든 상황이 일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난 번잡스러운 가족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가족 여행은 더더구나. 낯선 곳에서 여행자로 느끼는 자유보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맞추고 때론 내키지 않는 일정을 같이 해야 하는 묶임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당장 항공편과 숙박, 렌터카, 예약된 체험활동 취소를 논의해야 했다. 하지만 조바심내는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는 특별한 통증은 없다며 가족여행을 고수했다. 여동생 역시 자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출발 이틀 전까지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은 거였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여행은 그대로 진행됐다.


시작과 달리 전주의 첫날 밤은 괜찮았다. 한옥마을의 야경을 마음껏 즐기고 서로 이야기 나누며 79세 할아버지부터 6살 손자까지 추억의 밤을 지냈다. 다음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서둘러 한복을 빌려 입었다. 태어나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6살 조카를 비롯해 어른들까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고택 마당으로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우리는 처음부터 고택에 살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한복 하나만으로도 모든 사진이 작품이 됐다. 한복을 입고 비눗방울 놀이를 즐기는 손자 손녀들을 보며 부모님은 오래 미소 지었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이유>에서 일상의 부재, 노바디로서의 여행은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해방감을 준다고 말했다면 이것은 작가 혼자만의 여행이었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서로의 ‘합’을 느끼며 공감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노바디로서의 홀가분함은 없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 간의 동질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것 자체로 말이다.


우린 각자 살다 만났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하나가 되어있었다. 마치 따로 덩어리지어 있다가도 조물닥 하는 순간 언제든 하나의 덩어리로 뭉칠 수 있는 슬라임처럼. 각자의 개성으로 다양한 모양을 가졌으면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 그런 존재. 서로의 부족함을 퍼즐처럼 맞출 수 있고 때론 과감하게 지적할 수도 있는 그런 관계.


나에게 이번 가족여행은 혼자여서 행복한 ‘나’가 아니라, 함께여서 행복한 ‘우리’ 였다. '언니, 누나, 이모, 고모'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가족과 함께 했던 소중한 작은 추억이 가슴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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