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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Nov 12. 2022

"파티해봤니? 마흔 넘어 기숙사에서?"

작년 제주에서 서울교육연수원으로 6개월간 파견 갔을 때다. 내가 지낸 곳은 연수원 캠퍼스 안 숙소동 건물이었다. 그곳은 신혼부부용 펜션 같은 아담사이즈로 침실, 주방, 거실에 원만한 살림살이들이 다 갖춰있었다. 원어민 숙소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연수생 숙소로, 커다란 4층 건물에 입주자라곤 제주도에서 파견 온 2명이 전부였다.   

  

우리가 입주하고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 동두천에 사는 서울시교육청 소속 연수생이 들어왔다. 코로나 19 상황이라 원격으로 진행될 걸 예상하고 신청했는데 교육이 대면 집합으로 진행되면서 방배동 연수원까지 출퇴근 시간만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숙소를 신청했고 덕분에 숙소동에 3명이 살게 되었다. 여학생 둘, 남학생 하나.     


6개월 기간의 교육은 교양수업과 전문수업이 병행해서 진행됐다. 전체 연수생 32명 중 30명은 서울시교육청, 2명은 제주도교육청 소속이었다.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됐는데 숙소동 3명은 5분이면 강의동으로 유유히 갈 수 있었다.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난 대학 시절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 시절 강의실에 아슬아슬하게 오는 학생들은 기숙사 친구들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친구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산뜻하게 수업에 오는 데 반해, 5분 거리 친구들은 채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를 하고, 헐렁한 차림으로 헐레벌떡 수업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연수원에서 나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대학 시간이 아까워 일찍 눈이 떠졌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한 스트레칭 후 노트북 앞에 앉는다. 새벽 시간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고, 먹고 싶은 메뉴로 아침을 먹었다. 커피 머신에서 방금 뽑아 내린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마음껏 책을 읽는다. 주인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신선한 커피콩으로 내린 커피 향의 황홀감보다 진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새벽 시간도 내 것이었고, 그 시간이 주는 행복도 내 것이었다.      

숙소동 3인방을 동료 연수생들은 부러워했다. 강의실을 유유히 걸어서 온다는 이유보다 그들이 더 부러워한 따로 있었다. 30, 40대 비슷한 또래의 연수생들은 대부분 누구의 아빠, 엄마, 남편, 아내였다. 소중한 가족이지만 때론 우리처럼 당당히 혼자일 수 있는 자유를 그들은 느끼고 싶어 했다.     


교육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매번 개별과제와 분임과제가 주어졌고 실습 평가도 진행됐다. 발표는 덤이었다. 교육 중반이 지나갈 때쯤 그것들이 이력이 났다. 사실 두려움과 걱정을 묻어 버렸다는게 맞겠다.      

숙소동 세 명은 친한 연수생을 위해 조촐한 파티를 준비했다. 7~8명이 앉을 수 있게 옆방에 있던 식탁도 옮겨와 2개를 붙였다. 모자란 그릇, 컵들도 날랐다. 음식은 오겹살과 야채, 밀키트 제육볶음, 배달 앱으로 날아온 떡볶이와 김치찌개, 계란찜이었다. 동두천 친구는 매생이 떡국을 요리해 냄비째 가지고 왔다. 과일과 음료, 간식거리들과 함께 한 상 차려졌다. 누군가 음악을 틀었다. 집안을 감싼 음악은 우리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서로가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했다.     


대학 시절 밤 11시는 기숙사 통금시간이었다. 여대 기숙사 정문에는 마지막까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연인들이 이곳저곳에 서로 붙어 있었고 멀리서는 숨을 헐떡거리며 정문을 향해 뛰어오는 학생들로 붐볐다. 정각 11시가 되면 각 호실 앞에 4명이 한 줄로 서서 사감 선생님께 인사했고 그 옆에서 조교가 인원을 체크 했다. 인원 점검이 끝나면 핸드폰이 없던 그때 연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숙사 공중전화에 줄을 서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심 부럽기도 했다.     

 

마흔 넘어 누리는 대학 생활에서 남녀학생들이 환한 밤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의 아빠, 엄마인 우리지만 그 순간은 그냥 ‘나’, ‘너’ 였다. 준비했던 음료가 동나자 근처 편의점으로 남학생 두 명이 사러 나갔다. 밖에 나갔다 기숙사로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강의내용을 이야기하며 웃고, 강사 평을 하며 웃고, 딴짓하던 연수생 이야기에도 웃었다. 모든 게 재미있고 유쾌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건물 전체를 덮었지만, 이곳은 20년 전 ‘금남’의 여대 기숙사가 아니었다.      


매주 제출해야 할 과제와 시험, 발표, 쉽지 않은 교육이지만 사실 그런 건 우리에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모두가 마음은 직장이 아닌 캠퍼스로 향하는 대학생이었다. ‘나’일 수 있는 여유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이 나에게 왔다. 나의 40대 기숙사 생활은 고요하고 잔잔했지만 뜨겁도록 순수하고 가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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