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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ug 06. 2023

지옥행 대장내시경

나는 올해 국가건강검진 대상자다. 기본 검사 이외에 대장내시경과 복부초음파, 자궁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동시에 예약이 어려워 대장내시경은 다른 병원에서 받아야 했다. 예약과 함께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검진 3일 전부터 음식을 주의해야 했고, 전날 밤 9시 이후로는 금식이었다.      


드디어 검진 당일이다. 아침 6시, 생수 2리터에 3포의 가루약을 섞어 마셨다. 살짝 복숭아 맛이 나는 것이 먹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약물과 번갈아 가며 2리터 생수를 마셨다. 이제 슬슬 배가 아파야 하는데. 나의 임무는 노란색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대장의 찌꺼기를 다 배출하는 것이다. 4리터의 물을 다 마셨는데도 소식은 없다. 사명감에 계속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몇 번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노란 맑은 물이 나올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 가려면 이제쯤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다. 병원에 전화했다. 물을 더 마시라고 한다. 500밀리 생수 4병을 연거푸 마셨다. 급하게 많이 마셨는지 어질어질했다. 약물 2리터, 생수 2리터, 추가 생수 2리터 총 6리터가 내 배를 채웠다. 아랫배를 툭툭 쳐봐도 소식은 없고, 급한 대로 병원으로 출발했다. 


“제가 아까 전화했던 예약자인데요. 아직도 노란 맑은 물이 나오지 않아요”

“우선 준비실에서 편하게 계시다가 그곳 화장실에서 일을 보시고 저를 불러주세요. 제가 확인해 볼게요” 간호사의 말이었다.

아, 그럼 나의 배출물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건가? 좀 민망하긴 했지만, 직업의식이 투철한 간호사를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검진시간은 다가오는데 여전히 깜깜무소식이다. 간호사와 이야기 끝에 검진시간을 좀 늦추기로 했다. 잠시 후면 점심시간이라 검진은 2시로 미뤄졌다. 대신 추가 약물을 마시기로 했다. 물도 마셨다. 내 몸에 물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쉬지 않고 물을 마셨다. 어지러움에 몸이 침대 위로 꼬꾸라지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약물이 거꾸로 올라올 거 같았다. 일어나 침대 벽에 기대어 앉았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두통과 어지러움, 구토가 계속됐다. 핸드폰도 울리는 듯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내 몸뚱이 하나 지탱하기도 어려웠다. 호흡도 가빠왔다. ‘나 검진받으러 온 거 맞지? 아파서 온 거 아니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눈빛도 흐렸다. 가쁜 호흡에 말도 몇 마디 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미라였다.     


소식이 왔다. 화장실로 기듯 갔다. 2시가 돼서 간호사가 들어왔고 증거물을 살폈다. “음, 아직 좀 찌꺼기가 있네요. 젊은 여성분이 이 정도 시간에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안돼! 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더는 버틸 수 없다고요!’ 이제 입술까지 새하얘져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난 ‘검사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잠시 후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시간이 돼서 검사는 받아야 할 거 같네요.” 진정 그녀는 백의의 천사였다. ‘오!, 감사합니다.’     


검사실로 들어간 후 잠시 준비를 하고 수면 주사를 맞았다. 그다음 기억이 없다. 남편이 등장했다. 그제야 내가 눈을 떴다는 걸 알았다. 3시간 만이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연한 붉은빛에 투명한 자태를 지닌 대장이 모니터에 펼쳐졌다. ‘기본화면인가?’ 아니었다. 나의 대장이었다. 너무나 깨끗한. 의사가 말했다. “대장에 이상은 없어요. 그런데 보시는 대로 너무 허여네요.”     


아침 6시부터 준비한 검사가 저녁 6시가 돼서 끝났다. 간호사가 준비해 준 죽을 몇 숟갈 뜨고 병원을 나왔다. 두통과 어지럼증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구토가 나올 듯 구역질도 계속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구토가 확 올라왔다. 날렵하게 남편이 계단 구석에 있던 청소 양동이를 들이밀었다. ‘웩’ 건더기 폭포수가 쏟아졌다. 양동이를 얼굴에 대고 집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쓰러지고 싶지만, 다시 쏟아질 분위기다. 두통과 어지럼증, 매스꺼움까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쭈그린 자세로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 보니 아침이다.      


책상 위에 우편물이 보였다. 바로 뜯었다. 대학병원에서 온 건강검진결과다. ‘빈혈 의심’ 헤모글로빈 수치 ‘8.5’. 여성은 12 이상이 정상이니 한참 낮은 수치다. 의사가 창백한 대장내시경 사진을 보며 말했던 게 기억났다. “빈혈이 의심되네요. 색깔이 이 정도면 검사가 필요합니다.”     


‘아! 나의 대장검사 전 고통은 빈혈 때문이었나? 독한 약물에 생수를 몇 리터씩 마시고 버틴 결과였을까?’ 나의 대장은 사진으로, 검진결과서는 수치로 빈혈을 말하고 있었다. 침대나 의자에서 일어날 때, 운동 후 땀 흘렸을 때, 간혹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살짝 어지러움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운동으로 지쳐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누군가 대장내시경을 한다면 말해주고 싶다. 평소에 어지럼증이 있으신가요? 편안한 대장검사를 원하신다면 빈혈 검사부터 해보세요. 대장검사는 그다음에 하셔도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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