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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Aug 01. 2023

맨발 걷기의 행운

맨발 걷기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 신랑을 통해서다. 신랑은 건강 유튜브 채널에서 알게 된 맨발 걷기 매력에 푹 빠져 여름이면 모래 해변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날이 추워지면 근처 공원에서 맨발 걷기를 했다.     


맨발 걷기의 효능은 다양했다. 우리가 호흡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활성산소’인데 세포에 손상을 주고 노화를 일으키며 암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다. 그런 물질이 땅과 접촉하게 되면 땅속의 음전하와 결합하여 중화된다. 땅을 밟으면서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거다. 또한 맨발로 걸으면 발 근육이 발달하게 돼서 균형감각이 향상된다. 혈압도 낮아지고 혈관 건강이 좋아지며, 만병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 이 정도면 맨발 걷기는 젊음의 비결이다.      


맨발로 걸을 때 주의할 점도 있다. 날카로운 물질을 밟을 수 있어서 파상풍 주사를 맞아주는 게 좋다. 평발이거나 발바닥 지방층이 적은 고령층은 피하는 게 좋다. 이런 개인차에 따라 맨발 걷기가 이롭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쯤 되면 비용도 안 들고, 젊음 유지에 도움이 되는 맨발 걷기를 안 할 이유는 없을 거 같다. 문제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맨발 걷기 예찬론자인 신랑의 성화에 몇 번 따라가 봤지만 나는 이내 시들해졌다. 모래사장까지 왔다 갔다 하는 차 안에서 이 시간이면 탁구장에서 스윙하는 게 더 효율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연습 몇십 분에 금세 속옷이 젖어 버리는 탁구는 왠지 모를 즉각적 희열을 가져온다. 온통 탁구 생각뿐인 내게 맨발 걷기가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하기로서니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렇게 시들해졌던 내가 다시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이번엔 아이들과 함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주말에 온 가족이 야외에서 보고 즐기고 맛난 것을 먹는 일은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각자의 스케줄로 엄마·아빠와 함께 나가는 건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구실이 맨발 걷기였다. 중2, 고1인 아이들과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삼양 검은 모래 해변을 걷기로 했다. 해변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각자 에어팟을 들으며 같이 있는 듯 따로 있는 듯했지만, 바다에 도착하자 우리는 파도 소리를 같이 들어보기로 했다. 해가 지기 직전 해수욕장에는 맨발 걷는 사람들과 모래 놀이를 하러 온 가족들로 붐볐다. 해 질 녘 수평선 너머 오로라 못지않은 자태를 뽐내는 태양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들도 서너 팀이 있었다. 턱시도에 심플한 드레스를 입은 커플, 반바지에 짧은 치마를 입은 상큼 커플, 등이 훤히 보이는 드레스에 부케를 들고 포즈를 취한 섹시 커플 너무나 예쁘고 부러운 선남선녀였다.   

   

그 풍경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아빠와 아이들의 뒷모습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조심히 걸어 다녔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걷는 뒷모습이란. 두 살 터울인 남매의 뒷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맨발 걷기의 효능보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이렇게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기쁨에 아직 맨발 걷기는 시작도 안 했지만, 활성산소가 다 날아간 듯 몸이 가벼워졌다. 파도에 밀려오는 바닷물이 발등을 감싸고 푹신하면서도 단단한 모래를 밟을 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경쾌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은 부드럽고도 포근했다. 온종일 내 몸을 지탱했던 발의 무게를 모래가 받쳐주고 살짝살짝 밀려오는 바닷물이 발등을 씻겨주자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이런 가벼움이라면 날아오는 탁구공도 날렵하게 움직여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맨발 걷기 예찬론자인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탁구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맨발 걷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비록 부부의 동상이몽일지라도.      


아빠와 아이들 & 물수제비뜨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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