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치시네요!, 얼마나 치면 회원님처럼 치나요?”
오 놀라워라.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다니. 탁구장 1개월 차 레슨 회원이 내가 연습하는 것을 보고, 정확히는 고수 회원이 넘겨주는 공을 받아치는 것을 보고 내게 한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난감하다. ‘저요? 한 4년 넘으면 이 정도는 나와요.’ 이렇게 힘주고 말해줘야 할지, ‘아니에요.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에요 벌써 4년째 초보 오름부에요. 이제는 프로초보예요’라고 해야 할지.
나로 말하자면 초보인 듯 초보 아닌 초보 같은 탁구인이다. 탁구를 좀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탁구공과 엇박자의 리듬감을 가졌으면서 어찌어찌 라켓 끄트머리로 타구 하는 신박한 초보다. 뻣뻣이 서 있다가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초보, 몸 쪽으로 날아온 공을 몸으로 받는 초보, 경기 중에 열심히 코치를 해줬는데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요?’라고 되묻는 백치미 가득한 초보.
아! 이런 내가 언제쯤 오름부(9부)에서 금강부(8부)로 승급할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회원들은 이미 저만치 금강부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남아 신규회원들과 오름부 단체전을 꾸려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그래도 같이 참가할 수 있는 신규회원이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사한지. 그런데 문제는 대회 ‘참가’가 전부라는 거다. 승급은 못 했어도 ‘프로초보’ 답게 편안히 본선에 나갈 만도 하건만, 지난달에 있던 두 번의 대회 모두 예선 탈락이었다.
두 대회 모두 상대는 달랐지만, 예전에 내가 이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편안히 이겼던 사람도 있고, 어렵게 5세트까지 간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완패다.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뒤로 가는 듯하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이 정도인지, 조금은 답답하고 조금은 우울하다. 이렇게 하다간 영원히 초보로 남을 거 같다는 불안감이 으스스 내 주위를 맴돈다.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의 마귀를 쫓는다.
“경기 내내 완전히 굳었더라.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몸이 경직된 게 보여서 내가 더 불안했어. 표정마저 굳어서 파이팅도 없고. 충분히 이길 수 있던 경기였는데 스윙도 안 나와서 다 날리고. 근육이 경직돼 있으니까 치고 나서 다음 공 칠 준비도 늦고.” 경기를 지켜봤던 동호회 언니의 말이다. 스포츠에서는 시합의 긴장감에 근육이 경직돼 평소에 잘하던 동작이 안 나오는 현상을 입스(yips)라고 한다. 혹시 나에게도 입스가 온 걸까? 대회 적응력을 높이려 동호회에 공지되는 대회마다 부지런히 참가하건만 탁구장에서 연습할 때는 움직이던 다리가 대회에 나가면 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몸도 마음도 쪼그라들어 탁구장에서 활기 넘치던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올림픽 메달이 목표인 국가대표가 아니다. 직업프로선수도 아니다. 나는 탁구 아마추어다. 아마추어(amateur)란 단어는 프로보다 못한, 실력이 미숙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마추어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이나 스포츠, 기술 따위를 취미로 삼아 즐겨하는 사람이다. 애호가라는 말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몇 시간씩 탁구장에서 연습하고 금요일 저녁 약속이 생기면 탁구장에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사람이다. 좋아하니 못 말리는 사람, 말릴수록 더 즐거운 사람이 바로 아마추어다.
탁구를 더 재밌게 하려면 탁구공과 리듬을 맞춰 보라고 말해준 고수가 있다. 탁구는 리듬운동이라고. ‘리듬’이가 들어온다면 ‘경직’이가 있을 자리는 없어진다. 탁구공과 신나게 놀아보자. 같이 놀기엔 화장대 거울이 작아 보인다. 전신거울을 장만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눈에 보인다. 새로 산 거울 앞에 매트를 깔았다. 라켓을 들고 자세를 낮추며 리듬을 맞춰 본다. 다리도 사뿐히 좌우로, 스윙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쭉! 나에게 입스란 없다. 그런 건 프로한테나 줘버리자. 난 아마추어니까. 난 탁구 애호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