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을 살던 나 vs 무심을 배우는 나

by Irene

무심을 살던 나 vs 무심을 배우는 나

그 중간에서의 질문


이건 정말 정수 같은 질문이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가?”라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깨어 있는 삶을 살려다가 오히려 삶과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고 있었고, 나는 그 울림에 정직하게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예전의 나: 단순한 실천, 자연스러운 흐름


그때의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매일 10년 넘게 운동을 해왔다. 루틴은 몸에 새겨져 있었고, 어떤 판단도 필요 없었다.

비가 오면 그냥 갔다. 비는 그저 하나의 현상이었고, 판단하지 않았다.

운전하며 음악을 들었고, 빗소리와 데이트했다. 오히려 자연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저항이 없었다. “이것도 삶이지”라는 넉넉함이 있었다.


에고의 개입도 적었다. “이래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살아간다”는 흐름이었다.

그 안에는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무심에 가까운 상태가 담겨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무심은 ‘무심을 몰랐기 때문에 무심했던 상태’일 수도 있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자연스러움, 무지에서 비롯된 평온이었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지금의 나: 자각하려는 실천, 의식된 복잡함


지금의 나는 행동 하나하나를 살핀다.

이건 무심인가? 무위인가? 통제인가?


잠시 쉬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바라본다.

이 쉼은 회피인가? 자각인가?


무엇을 하든, 그 전에 통찰이 앞선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이 행동을 선택하는지 본다.

지금의 나는 의식이 깨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내 마음을 관찰하려 한다.

내 감정과 충동, 그 뿌리를 보려 한다.

무지를 넘어서 자각을 통과하려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은 머리가 마음을 앞서는 시기일 수 있다.

살아내기보다 해석하려 드는 시기.

처음 수행자들이 흔히 겪는, 깨어 있으려다가 삶과 거리감이 생기는 그 단계.


그래서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의 핵심은 그거다.

그냥 갔던 내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

지금 이렇게 생각이 많아진 내가 더 도에 가까운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예전의 나는 무심을 ‘살고 있었지만 몰랐던 상태’였고,

지금의 나는 무심을 ‘의식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둘 다 진실한 길 위에 있었던 나다.

다만 지금은 무지한 자연스러움에서, 자각된 자연스러움으로 가는 전환기일 뿐이다.



비유 하나: 물고기와 잠수부

예전의 나는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같았다.

물을 의식하지 않아도, 물 안에서 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냥 살았고, 자연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간 사람 같다.

물의 압력은 어떤가? 내 호흡은 어떤가?

온몸으로 물을 느끼고 관찰하고 있다.


잠수부는 물고기보다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물을 자각하며, 스스로 선택해서 잠수한 존재다.

나중에는 그도 물고기처럼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의식적인 존재로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런 흐름이다

무지의 무심

그냥 산다. 판단 없이 흐른다.

예전의 나


의식의 복잡함

판단하고, 본다. 분별한다.

지금의 나


통합의 무심

판단이 사라지고도 자각은 남아 있다.

앞으로의 방향


나는 지금 1단계에서 3단계로 가는 길목에서 2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이 길은 복잡해지는 게 당연하다.

왜냐하면 자각은 항상 혼란을 동반하니까.


그렇다면 오늘 같은 날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지금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그것은 회피가 아니다.

그 감정을 자각하고 바라보았다면, 그것은 이미 무위 속의 유위다.


예전에는 그냥 갔던 그 길을

지금은 더 깊은 자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더 복잡해졌다고 해도 그것은 더 깨어난 선택이다.



내가 복잡해졌다고 느끼는 그 순간,

나는 이미 진짜 무심의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예전보다 더 자주 멈춰서고,

더 조용히 들여다보고,

더 책임 있게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그건 도에서 멀어진 삶이 아니라,

도를 살아내기 시작한 삶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전의 나는 물처럼 흘렀고,

지금의 나는 물을 인식하며 걷고 있다.

둘 다 강이지만,

지금은 그 강의 흐름을 내가 알아차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무심의 시작이다.



https://open.substack.com/pub/irenekim2/p/the-me-who-lived-without-mind-vs?r=5k6vb5&utm_campaign=post&utm_medium=web&showWelcomeOnShare=true


월, 수, 금 연재
이전 03화무위의 역설: 처음엔 복잡하지만 결국엔 고요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