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눈을 뜨자마자 마음속에 하나의 결심을 품었다.
“오늘 하루,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 흘려보내보자.”
어떤 분석도, 해석도 없이, 단지 올라오는 생각들을 인식하되,
붙잡지 않고 지나가게 두는 것.
말하자면, 바람이 창가를 스쳐 지나가듯,
생각을 내 안에 들이지 않고 보내주는 연습이었다.
그리고 그 결심 하나로 시작된 오늘은,
내게 예상치 못한 ‘내면의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
그저 이불 속에 누운 채 눈을 떴을 뿐인데—
이미 무수한 생각의 실타래에 엮여 있었다.
“지금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방향이 맞을까, 저 방향이 더 나은 건 아닐까.”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
마치 수십 번의 회의를 통과한 사람처럼
피곤에 젖어 있었다.
생각의 결은 가볍고 얇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하루의 첫걸음조차 무거워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인지의 훈련을 해왔다.
감정이 올라오는 미세한 진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말투, 시선, 마음의 무게 중심까지 포착해내며
하나하나를 해석해내는 능력을 쌓아왔다.
그런데 그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나를 감시하는 장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늘 나를 관찰하고,
생각의 의도를 해석하고,
감정의 방향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가?
이 생각은 에고인가 본질인가?
내면의 CCTV는 결코 꺼지지 않았고,
늘 투명한 유리벽 안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아침, 생각을 흘려보내기 시작하며
내 안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게 오래 걸려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인지할 수 있게 된 지금,
그 모든 걸 다 흘려보내야 한다면…
애초에 그 인지 훈련은 왜 필요했던 걸까?”
그 질문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지난 시간을 통째로 끌어안고
지금, 그 여정의 의미를 묻는 내면의 소리였다.
그리고 조용히 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붙잡기 위해 훈련했던 것이 아니라,
놓아주기 위해 훈련해온 것이었음을.
하루 종일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아, 생각이네.”
“지금 걱정이네.”
“이건 판단이구나.”
조용히 알아차리고,
그것을 머무르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놓아주었다.
그러자 내 안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 하나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든 항상
“이게 옳은가?”, “이게 더 효율적인가?”, “이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수많은 계산이 내 안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것을 ‘생각’이 아닌 ‘나의 일부’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실
그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도 같은 것이었다.
형체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움직임.
이제 알게 되었다.
진짜 고수란, 모든 걸 분석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은 애써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는 사람.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능한 것이 아니라,
생각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람.
무아(無我)는 그런 자리였다.
‘내가’ 뭘 하겠다는 의지를 내세우지 않아도
삶이 나를 통해 저절로 흘러가는 상태.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
이제 ‘감시’에서 ‘신뢰’로 이동하고 있다.
생각이 떠오르면
“또 왔구나.”
그리고 그냥 보내준다.
감정이 올라오면
“지금 이 감정이구나.”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더 이상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없애려 애쓰는 순간,
오히려 그 생각은 더 뚜렷한 모양으로 자리 잡는다.
다만,
그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그저 지나가게 둔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
생각의 숲에 길을 내지 않고
그저 그 숲을 조용히 걷는 이가 되기로 했다.
붙잡지 않음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중심.
그것이 내가 오늘 배운 삶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