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4]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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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효율이라는 단어 안에 나를 가두고 살아왔다. 하루를 설계할 때, 느슨한 시간은 곧장 ‘낭비’로 치환되었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은 다음 일을 계획하느라 분주했다. 청소기 소리를 들으면서는 다음 루틴을 떠올렸고, 샤워기 아래에서는 아이디어를 재정리했다. 나에게 ‘지금 여기’란, 그저 다음을 위한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멀티태스킹은 습관이 되었고, 생각은 감각을 밀어내며 당연한 듯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어제, 아주 단순한 훈련을 시작했다. 딱딱한 사고의 껍질을 벗기고, 순간순간의 감각을 하나씩 만져보는 연습이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청소를 하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딘가 비효율적인 듯 불안하게 느껴졌다. 물을 틀고도 머릿속이 고요한 그 순간,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내가 평생 피하려 애써온 ‘멈춤’의 얼굴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멈춤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문 하나가 열렸다. 샤워기 아래, 흐르는 물이 내 피부에 닿는 순간, 처음으로 물의 온도를 ‘느꼈다’. 그냥 따뜻하다는 정보가 아니라, 그 따뜻함이 피부를 감싸고 스며드는 감각 자체를 말이다. 물줄기의 리듬, 물방울이 어깨에서 무릎으로 흘러내리는 궤적, 수증기의 숨결. 그동안은 그저 씻기 위해 샤워를 했고, 그 순간에도 머리는 다른 시간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번엔 그 시간 속에 내가 온전히 존재했다.


몸에 로션을 바를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예전엔 ‘로션을 바른다’는 동작만 남아 있었지만, 이번엔 손끝에서 느껴지는 피부의 결, 로션이 천천히 퍼지며 남기는 잔향 같은 감각들이 너무도 선명했다. ‘이렇게 쓸어내리는구나, 부드럽구나.’ 감각이 올라오지 않을 땐 조심스레 말로 붙잡았다. “물이 이렇게 따뜻했구나.” “피부가 이렇게 숨 쉬는구나.” 그러자 감각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말이 길을 내주면, 감각이 따라 들어왔다.


이것은 단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늘 ‘현재에 머물고 있다’고 믿어왔던 착각을 조용히 깨뜨리는 일이었다. 그동안 매 순간을 계획했고, 낭비 없이 움직였으며, 멈추지 않았기에 충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생각으로 조절된 ‘현재’는 진짜 현재가 아니었다. 감각이 빠진 현재는 그저 미래를 준비하는 무대일 뿐이었다.


이 훈련은 일상 전체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왔다. 청소기의 진동이 손에 더 또렷하게 느껴졌고, 창밖의 하늘은 이전과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하늘을 보는 것조차 하나의 ‘태도’였다. 나는 여유 있는 사람이고, 그러니 하늘도 가끔은 봐야 한다는 식의 습관적인 동작. 하늘을 보는 나 자신이 중요했고, 하늘 자체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는 그 반대였다. 하늘이 먼저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안에 조용히 서 있었다.


운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헬스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눈앞을 지나치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무가 많았나?’ 세상이 갑자기 바뀐 건 아닐 텐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풍경이 새로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그 안을 보게 된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목소리까지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매일 내 목소리를 녹음해 듣는 편인데, 이번에는 무언가 확연히 달랐다. 단지 느린 말투나 차분한 어조 때문이 아니었다. 목소리의 결이, 울림이, 파장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내면이 평온할 때만 나올 수 있는 진동이었고,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이였다. 아마도 내 의식이 외부로 흘러나가는 대신 안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목소리는 그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완전하지 않다. 감각이 흐려질 때면 예전처럼 생각이 앞서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다시 ‘해야 할 일들’의 물결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물소리 하나, 손끝 감촉 하나가 나를 다시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을. 멈추는 법을 안다는 것, 그것은 곧 살아 있는 의식을 되찾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 나는 하루에 한두 번, 작고 단순한 루틴 속에서 감각을 회복하는 연습을 이어간다. 샤워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로션을 바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울릴 때,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아주 오랫동안 철학과 심리학을 읽고 사유하며,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매일 시간을 아끼며 살아왔다. 어제보다 단 하나라도 나아졌다면, 그 하루는 충분히 보람 있었고 나는 그 성장감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라면, 어제 시작한 이 새로운 훈련 역시 다르지 않다. 내 인생의 질을 조금 더 깊게 만들고, 내가 스스로 흠모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매일 이렇게 하나씩, 조금씩이라도 무엇인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나의 미래는 얼마나 더 사랑스럽고, 얼마나 더 만족스럽고, 감사함으로 가득 차게 될까. 그래서였는지, 단 한 번도 과거가 그립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매일의 오늘이 늘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였기 때문이다. 과거를 떠올리면 미성숙했고 알지 못해서 했던 선택들이 많았고,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래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이해와 기쁨이 펼쳐질지 자연스레 기대하게 된다.


아마 이런 마음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오늘보다 조금 더 깨어 있고, 오늘보다 조금 더 온전히 살아 있는 하루를 반복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연습 중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감각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지금, 분명 이전보다 삶의 한가운데에 조금 더 가까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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