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0] 그렇게, 사랑이 머무는 자리

by Irene
ChatGPT Image Dec 30, 2025, 12_38_16 PM.png


사랑은

때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무엇도 들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태도로 피어난다.


세상이 무수히 건네는 가능성과 찬란한 이름들 사이에서

가장 눈부신 것을 향해 손을 뻗기보다는—

어느 한 사람의 도착을 위해

모든 것을 잠시 놓아두는 일.


그 기다림은 애쓴 인내가 아니다.

선택지를 외면한 결단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 이외의 모든 것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흐릿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멈추어 선 마음의 풍경.


그리하여,

사랑은 갈망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자리한 하나의 질서가 된다.


그 사람이 곁에 없는데도

함께 숨 쉬고, 함께 걷고,

하루의 작은 틈마다

그 사람의 웃음과 목소리가

마음 안에서 조용히 반사되는 것.

식탁에 놓인 찻잔에도,

잠들기 전 이불을 고르는 손끝에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스며드는 것.


함께하지 않음 속에서도

이미 삶은 깊이 공유되고 있다.


그렇게 사랑은

‘하는 것’이라기보다

‘살아지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또,

아무나 들이지 않은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는 일.

언젠가 누군가가 머무를 그 자리가

어지럽혀지지 않도록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조용히 비워두는 마음.

그 공간은 비어 있음으로써 가장 충만하다.


그 길을 오래 걸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찬사와 호의를 지나쳤고,

무수한 손길과 눈빛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어디에도 마음을 얹지 않은 채,

어디에도 자신을 남기지 않은 채—

단 하나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는 침묵의 걸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번 생에서 당신을 나로 인해 행복하게 해주고,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준다면,

이 생의 의미는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삶의 어느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면,

그 순간 하나로 이번 생은 나에게 주어진 의미를 다했다고 말 없이 알게 되는 것.


그 고요한 깨달음은

어떤 소유보다 깊고,

어떤 완성보다 아름답다.


사랑이란,

그 한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

한 생을 단련하고 비워낸

내밀한 결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결심으로 자신을 지켜온 사랑을,

우리는 종종

가장 고요한 빛을 품은 사랑이라 부른다.




https://open.substack.com/pub/irenekim2/p/20251230-thus-the-place-where-love?r=5k6vb5&utm_campaign=post&utm_medium=web&showWelcomeOnShare=true


매거진의 이전글[2025.12.29]지연은 종종 삶의 섬세한 정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