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때로 무엇을 향해 나아가기보다,
무엇도 들이지 않은 채 머물러 있는 태도로 피어난다.
세상이 무수히 건네는 가능성과 찬란한 이름들 사이에서
가장 눈부신 것을 향해 손을 뻗기보다는—
어느 한 사람의 도착을 위해
모든 것을 잠시 놓아두는 일.
그 기다림은 애쓴 인내가 아니다.
선택지를 외면한 결단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 이외의 모든 것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흐릿하게 느껴져
자연스레 멈추어 선 마음의 풍경.
그리하여,
사랑은 갈망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자리한 하나의 질서가 된다.
그 사람이 곁에 없는데도
함께 숨 쉬고, 함께 걷고,
하루의 작은 틈마다
그 사람의 웃음과 목소리가
마음 안에서 조용히 반사되는 것.
식탁에 놓인 찻잔에도,
잠들기 전 이불을 고르는 손끝에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스며드는 것.
함께하지 않음 속에서도
이미 삶은 깊이 공유되고 있다.
그렇게 사랑은
‘하는 것’이라기보다
‘살아지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또,
아무나 들이지 않은 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는 일.
언젠가 누군가가 머무를 그 자리가
어지럽혀지지 않도록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조용히 비워두는 마음.
그 공간은 비어 있음으로써 가장 충만하다.
그 길을 오래 걸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찬사와 호의를 지나쳤고,
무수한 손길과 눈빛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어디에도 마음을 얹지 않은 채,
어디에도 자신을 남기지 않은 채—
단 하나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는 침묵의 걸음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번 생에서 당신을 나로 인해 행복하게 해주고,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준다면,
이 생의 의미는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삶의 어느 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면,
그 순간 하나로 이번 생은 나에게 주어진 의미를 다했다고 말 없이 알게 되는 것.
그 고요한 깨달음은
어떤 소유보다 깊고,
어떤 완성보다 아름답다.
사랑이란,
그 한사람을 웃게 하기 위해
한 생을 단련하고 비워낸
내밀한 결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결심으로 자신을 지켜온 사랑을,
우리는 종종
가장 고요한 빛을 품은 사랑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