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생각'이 곧 '나'라면, 그리고 '성격'이란 내가 반복하여 머무는 생각들의 풍경이라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자주 묻는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 그 사람을 자주 떠올리고 그 사람처럼 생각하려 한다면, 나는 언젠가 그 사람에 닿을 수 있는 걸까.
행복과 성공을 정의해본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흠모할 수 있는 존재로 천천히 성장해가는 여정 아닐까. 거울 속의 내가 낯설지 않고, '그 사람 참 멋지다, 참 고귀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날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의 감촉일지 모른다.
아무리 '억만장자'의 위치에 서더라도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한다면, 그 부는 허공 속의 무게일 뿐이다. 자기애 없는 곳에 진정한 성공은 깃들 수 없다.
물론, 경제적 여유는 삶에서 현실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선택의 여백을 만들고, 무엇보다 '하지 않을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결국 나를 지키고, 내가 되고 싶은 존재로 향하는 바람의 방향타가 된다.
자율성— 인간이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이 감각은 삶의 질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타인의 기대에 눌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반복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눌러야만 한다면— 나는 점차 내가 아닌, 타인의 조각으로 깎여나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이라는 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붙잡고 있는 생각, 그 생각이 곧 나라는 사실로. 그러니 올바른 생각만 선택해서 그것만 단단히 품으면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생각은 단순히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 밀려오고, 두려움이 조용한 새벽에 침입해올 때면 나는 그 흐름 앞에 무력해진다.
어쩌면 이 영역은, 인간이 감히 신의 세계를 흉내 내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이하영 작가님은 말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책에서 본 문장들이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때, 그제야 비로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 이 말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생각은 어느 날 문득, 어떤 삶의 결을 따라 내 안에서 '되어진다.' 몸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자주, 그 '되어지는' 생각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머리로는 안다. 명상, 심상화, 마음챙김—모두 소중한 도구들이다. 하지만 경험은 내게 또 다른 진실을 말해주었다.
아침, 꿀잠 자고 상쾌하게 눈을 떴을 때— 나는 세상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용기가 솟았고, 막연한 희망이 뺨을 스쳤다. 이 모든 '좋은' 생각들은 의식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어진'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신체의 컨디션이 곧 마음의 기후를 바꾼다. 예민하고 피로한 날엔 운동을 통해 나를 끌어올린다. 움직임은 감정의 맑은 물살이 되어 내 안의 불편한 감정들을 눌러준다. 그런 날은 별다른 노력 없이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와 가까워진다.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진다.
다시, 본질로 돌아오다. 수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흡수하며 삶을 해석하려 해도 결국 나는 가장 단순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을 때 그것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거나 깊이 있는 의미로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헬스장으로 가자. 간단하게, 그냥 헬스장에 가서 데드리프팅, 스쿼트 몇 세트 하면 웬만한 건 그대로 해결된다.
그러니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간단하고 쉽게 바라보자. 의외로 그렇게 생각하면 거의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된다.
체력이 실력이고,
체력이 성격이며,
체력이 인격이고,
체력이 곧 나 자신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what-if-my-thoughts-are-me-8cf57e194b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