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진다. 통찰력과 직관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 순간에 무엇이 진실인지' 단번에 꿰뚫어보는 힘일지 모른다. 단순한 감정의 표출도, 미신적 사고도 아니다. 점이나 주술처럼 외적인 무엇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오랜 시간 다듬어진 생의 총체적 경험에서 비롯된 깊은 인식이다.
통찰과 직관을 지닌 이들은 종종 미래의 가능성을 예견한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말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며 묻는다. "어떻게 저런 것을 미리 예측할 수 을까?"
하지만 그 답은 생각보다 신비롭지 않다. 그들은 단지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방대한 자료와 역사, 인간의 삶과 감정, 수많은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간접 체험하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낸 사람들이다. 그 모든 것이 스며들어 통찰이라는 이름의 빛으로 드러난다. 그 빛은 결국 '경험'을 통과하여 비로소 드러난다.
나 또한 누군가를 만날 때, '착하고 선한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던 순간들은, 내가 매일같이 작은 선함을 실천했을 때 찾아왔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작고 단단한 선의 실천들이 쌓이면서, 나는 어느새 눈빛, 손짓, 얼굴의 표정, 걸음걸이, 앉은 자세 같은 아주 미묘한 결들 속에서 그 사람의 본질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알려고 애쓰는 눈'이 아니라, '느껴지는 마음의 눈'이었다. 바로 이 힘이 통찰력이고, 직관력이다.
통찰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같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정의롭고, 순수하며, 선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어떤 결심이나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정의로운 말 한 마디, 순수한 눈빛 하나, 선한 행동 하나를 실천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삶을 살다 보면, 나는 쉽게 오해하지 않게 되고, 불필요한 오만이나 무례함으로부터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그러할수록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맑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마음의 눈은 그렇게 열리고, 진실은 그 눈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대부분의 고통은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자기 안에 지은 감옥—곧 성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 감옥은 오래된 습관, 반응, 두려움, 방어로 지어진다. 나는 지금, 그 감옥을 하나씩 허물어가고 있다. 성격이라는 낡은 틀을 벗고, 진정한 나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을 조금씩 다시 채워간다. 맑음으로, 기쁨으로, 온기로. 선함으로, 친절함으로.
그렇게 나 자신을 바꾸어가는 여정이야말로, 진정한 통찰을 기르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이 여정의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 작지만 분명한 하나의 선한 행동. 그것이 나를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그 눈으로 또 다른 선한 사람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eye-of-the-heart-on-growing-insight-and-intuition-5da9fd06116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