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by Irene
millieBook-1748037302705.png



지금 내가 괴롭다면, 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다면, 그것은 정말로 내 외부의 ‘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했는지에 따라 만들어진, 내 ‘마음’의 반응일까? 나는 이 질문 앞에 자주 멈춘다. 때로는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보며, 그것이 바람의 힘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람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치 폭풍 속의 산처럼,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세상의 소란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 그런 통찰력과 내면의 힘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공포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서 비롯된다.


내가 고통스럽고 어지럽고 불안하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 ‘어두운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두운 시선은 사악한 것을 상상하고, 무지의 망상에 휩싸인 채 내 안의 괴물을 키워낸다. 내 안에서 커진 그 그림자는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게 내 마음을 삼킨다.


나는 때때로 법칙 하나를 세워놓고 그것에 맞춰 세상을 재단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반드시 이런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한 사람, 한 사건, 한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서 의미를 캐내려 애쓴다.

'이건 왜 일어난 걸까?', '이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이 상황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

그렇게 끝없는 해석의 미로를 헤매며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불안의 그물 속에 가둔다.


분석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분석이라는 것이 결국 내 ‘주관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은 채, 그것을 진실이라 착각한 것이 문제였을까? 해석은 언제나 해석일 뿐,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왜 나는 자꾸 놓쳤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예측하고, 정의하고, 명확히 하려는 모든 시도가 사실은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급한 몸짓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상상과 공포로 내면을 소란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껏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 끊임없이 해석하고 의미를 덧씌웠으며, 그 해석이 만들어낸 감정에 휘둘렸다. 그 결과 나는 사물이 아니라, 내 감정을 통해 왜곡된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통찰력이 아닐까? 고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 선함과 온화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분석과 해석은 중요하다. 그것은 통찰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훈련일 뿐이다. 다만, 내가 내린 결론이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어떤 판단이 섰더라도, 그것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자꾸 조정하려 했다. 정의하고, 해석하고, 틀을 만들고, 내 마음대로 결론지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미래를 통제하려 했다. 그것이 근본적인 고통의 씨앗이었다. 그러나 모든 해석은 결국 나의 상상일 뿐이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운명일까?”

이 모든 질문이 사실은 필요 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은 단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그저 사람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흘려보내자.

‘아, 그랬구나.’


물론, 말은 쉽다. 그러나 이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내면의 눈을 밝히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길 끝에서 나는 진짜 평온과 통찰력을 만날 것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reflections-in-translation-8eb29d2dfdfe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
이전 27화통찰력은 선의를 오래 지속하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