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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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안의 연속이다. 그 불안은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 끝없이 요동치는 깊은 물결과도 같았다. 감정의 물결이 표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느끼기보다는 억누르기를 택했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자극이 될 만한 요소들을 철저히 차단하며, 시야를 좁히고 감각을 걸러내며 경험의 문을 닫았다. 그것만이 감정이라는 거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흘려보내세요. 분석하지도 말고 결정하지도 마세요. 그저 하루하루를 흘러가게 두세요.”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모호하게 느껴졌다. 형이상학적인 말들이 왜 나를 향해 쏟아지는지, 왜 철학처럼 들리는 그 문장들에 자꾸만 내가 밀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명확한 것을 원했다. 감정에도, 삶에도, 관계에도 불확실함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내가 쌓아놓았던 환경 통제를 모두 풀고, 가장 자극적인 환경 속에 나 자신을 놓아보았다. 처음 며칠 동안은 변화의 의미조차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도 모른 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린 듯 어렴풋한 평온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안, 긴장, 기대, 설렘… 모든 감정이 분명히 나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 중심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평정이 느껴졌다.


"뭐, 돼도 되고 안 돼도 되지.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그런 마음이 스며들었다.


이것이 ‘흘려보낸다’는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는 이 애매함 속에 조용히 앉아 머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애매함을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라 여겨왔다. 인간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곧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명확히 규정하고, 단정 짓고, 구조화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삶을 설계해왔다. 그것이 나의 결단력이자 삶의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모든 통제로부터 오는 평온은 실은 '차단'의 평온이었다. 이제 새롭게 마주한 평온은 흐름 속에 머무는 평온이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감정을 억지로 정의하지 않고, 그저 물이 흐르듯 감정을 흘려보낸다. 흐름 속에서 모든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고,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아 맑은 물이 되듯이.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정한 평온은 물의 흐름을 억지로 움켜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옆에 조용히 머무는 데 있다는 것을. 물은 결국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고, 나는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얼마나 오랫동안 손에 힘을 주고 있었던가.


지금 나는 그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억제하지 않고, 해석하지도 않은 채 그저 머무르는 것. 불편하고 모호했던 그 애매함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흐름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흐름과 함께 머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 연습이 삶이라는 여정에서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https://medium.com/@irenekim1b/sitting-with-the-flow-learning-to-let-go-of-ambiguity-0f77089a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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