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근본은 중용을 지키는 데 있다.

by Irene
millieBook-1750889073001.png



고요를 찾기 위해 나는 종종 나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 일이기도 하고, 깊은 바다 속을 응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휴식과 회복을 주는 어떤 취미로 드러난다. 단순한 취미 같지만, 그것은 내가 나를 다시 붙잡는 방식이자, 내면의 숨결을 고르게 하는 숨통이기도 하다. ‘이것을 하라’는 조언은 곧 나에게 허락된 생의 작은 안식처를 만들어 가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목소리는 말한다. 삶에는 확실하고 절제된 원칙이 필요하다고. 일상의 반복 속에 나를 지키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마치 수묵화의 여백처럼, 그 원칙 속에 야외 활동의 시간도 채워져야 한다. 자연의 바람과 햇살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외부의 풍경을 들여다본 뒤에는, 반드시 마음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고독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과 마주하는 그 침묵 속에서만 들리는 미세한 떨림이 있다.


사람들이 원할 때마다 나서는 일도 멈춰야 한다. 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숨기는 선택을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나를 만난다. 그렇게 고독 속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일 중독이라는 위험에서 자신을 단단히 단속해야 한다. 느슨해지지 않되, 조이지도 않는 그 미묘한 고삐의 조절이야말로 진짜 훈련이다. 더 나아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더 큰 대의에 헌신할 수 있는 삶, 그것 또한 요구된다.


이 모든 것이, 겉으로 보기엔 모순처럼 보인다. 이것도 과하면 안 되고, 저것도 부족하면 안 된다. 늘 어떤 한 편으로 기울지 않게 중심을 잡으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가르침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중용(中庸)’이다. 어떠한 것도 지나치지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 지혜의 근본은 중용을 지키는 데 있다.


고차원의 삶이란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 그리고 그 둘 사이의 미세한 진동을 감각하는 것이다.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 나는 그 중용의 선을 잘 지키고 있는가? 어떤 것에 지나치게 휩쓸려 있는 건 아닐까?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 ‘적절함’의 선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을 맞춰가기 위해 끊임없이 조정하고 고쳐가다 보면, 점점 더 나만의 기준이 생기고, 조금씩 그 ‘적절함’의 결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실력이며, 훈련이며, 수련의 과정일 것이다.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노를 젓는 일처럼. 삶도 그렇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의지로, 균형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in-search-of-stillness-a-meditation-on-balance-2834a829cfb8


월, 화, 수, 금, 토, 일 연재
이전 23화“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