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나의 시선을 조용히 단속한다.

by Irene

나는 오랫동안 ‘시선 관리’라는 훈련을 해왔다.


그것은 단순히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보지 않을 것인가, 어떤 장면을 내 눈에 들이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아주 의식적인 선택의 훈련이었다.


학교에 갈 때, 운전할 때, 운동을 할 때, 길을 걸을 때, 쇼핑할 때, 산책을 할 때조차도 나는 늘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들을 무방비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썼다. 수동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극들이 내 안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며, 언제나 ‘내가 선택한 것만’ 눈에 담으려 했다.


그 기준은 명확했다.

이 장면이 나의 기분과 정신 상태, 하루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유지시켜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들만이 나의 시야에 들 자격이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볼 때도 나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잠깐 지나가는 썸네일 속 이미지 하나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범죄 다큐멘터리에서 범죄자의 얼굴이 모자이크 없이 등장하면, 나는 단 한 순간도 그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그런 얼굴에는 일종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것을. 그 기운은 내가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 내 정신의 깊은 곳으로 스며들고야 만다.


내가 눈으로 본 것들은 단순한 시각 정보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감정의 파편이 되어 기분을 바꾸고, 사고의 리듬을 흐트러뜨리며, 때로는 꿈속까지 따라 들어와 나를 흔든다.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되는 것처럼, 범죄자의 뒤틀린 표정을 바라본 후에는 내 마음 어딘가가 비뚤어져 있는 듯한 기분을 감지한다. 그 찡그린 얼굴의 파형이 나의 내면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훈련했다.

시선을 고르고, 빛을 선별하고, 원하지 않는 자극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연습을.


그러나 이 훈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도, 거리에서도, 나는 의도하지 않은 시선과 마주친다. 주의를 주고 싶지 않은 대상에게도 시선은 불현듯 머무른다.


하지만 통제된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시선을 통해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자기 보존의 기술인지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그 시선의 훈련에서 다시 한 번 실패하고 말았다. 무심코 유튜브를 넘기다가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에 이끌려 클릭한 영상. 모자이크로 가려진 이미지였지만, 오히려 그 가려진 형상이 더 강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 장면은 영상의 내용이 아니었다. 찰나의 이미지, 한 줄기의 기운처럼 나의 뇌리에 박혔다. 나는 자려고 눈을 감은 순간조차 그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깨달았다.

눈으로 들어온 자극은 우리의 마음, 신체, 감정의 평온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시선을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지 않겠다’는 태도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경계이며,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매일같이 선택하는 의지의 실천이다.


내가 무엇을 눈에 담는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는지를 결정짓는다. 나는 나의 시선으로 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시선을 조용히 단속한다.

어떤 것도 함부로 내 안에 들이지 않기 위해, 때로는 고요를 위해 눈을 감는 쪽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https://medium.com/@irenekim1b/the-discipline-of-gaze-management-e76fa72d53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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