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그를 버려도, 나는 그의 곁에 머물고 싶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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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랑은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감정은 불같은 열정이라기보단, 구조처럼 조용하고 명료하게 다가온다.

나는 오늘, 그 조용한 감정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조건이 만들어낸 감정의 그림자였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람의 언어보다 침묵을, 말보다 자세를, 감정보다 구조를 먼저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 분위기, 감정의 결보다

그가 살아온 삶의 구조가 나에게 더 큰 신뢰를 줬다.

그 구조가 탄탄해 보이면, 내 감정은 조금씩 열렸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안다.

그 구조를 감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조건 덕분이었다는 것을.

외형, 분위기, 안정감 있는 태도, 사회적 징후들.

이 모든 것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그 사람에게 감정을 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오늘 내가 정직하게 마주한 진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랑 앞에서 훈련 중이다.

조건을 안 보려고 애쓰는 훈련이 아니라, 조건을 보아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 훈련.

그 사람의 배경, 외형, 안정감이 나를 끌어당길 수 있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채고, 더 깊은 구조로 들어가 보는 연습.


내 감정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어떤 외형에 반응하고, 안정에 기대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언젠가 외형이 사라져도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랑이란 결국, 감정의 진실과 조건의 그림자를 구분해내는 훈련일지도 모른다.

그 훈련은 때때로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내 내면의 윤리와 충돌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그 불편함을 껴안기로 했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나에게 먼저 세워야 하니까.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가 무너져도, 이 세상이 그를 버려도, 나는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 나는 그 구조의 일부를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조건에서 시작된 감정이라도, 그것이 진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조건을 넘는 사랑은, 결국 내 안의 해석을 넘어설 때 시작된다는 것.


그걸 오늘, 조금은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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