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말의 구조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 했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답하는지—그 반응의 속도와 목소리의 높낮이, 사용하는 단어의 질감, 표정의 미세한 변화, 시선의 흐름, 눈 깜빡임의 리듬까지—모든 것을 세밀히 관찰하며 분석했다.
나는 심리학을 공부했고, 철학서를 읽으며 인간 내면의 구조를 해석하려 했다. 이처럼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였고, 나는 그것을 해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해석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 무의식의 결을 드러내고, 말의 리듬과 표현은 존재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질문하고, 응답을 분석하며 타인의 본질에 닿고자 했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 이르러, 나는 거꾸로, 말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진실을 말해주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질문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도, 그 사람의 본질은 침묵 속에서, 말의 부재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질문을 멈췄다. 그의 나이도, 직업도, 가족도, 살아온 배경도 묻지 않았다. 알고자 하는 욕망 대신, 존재 그 자체를 조용히 바라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무언가를 원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나는 늘 무언가를 바란다. 사랑에서는 감정적 안정과 교감을, 일상에서는 통제 가능성을, 미래에서는 예측 가능한 희망을 원한다. 그러나 ‘원하는 마음’이 작동하는 순간, 나는 상대를 해석하고 조절하고 구조화하기 시작한다. 사랑조차, 소유의 무게를 얹게 된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없이 하루를 살았다.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고, 그 사람을 바라보며 그저 나의 느낌, 나의 감정만을 정직하게 느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상대에게서 흘러나온 모습이야말로 가장 날것의 진실이었고, 어떤 수사도 덧붙여지지 않은 존재의 본질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은 ‘존재’로 증명된다. 그리고 그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사랑의 전제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내가 그 본질을 품을 수 있다면, 나는 그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설령 고통스럽더라도, 나는 그 본질을 존중하며 관계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고, 사랑에 대한 예의다.
이제 나는,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던 시절을 지나 ‘말하지 않는 법’을 훈련하게 되었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존재의 가장 투명한 형식이다. 하루를 지나며 내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관계가 깊어진 날, 나는 알 수 없는 안도감으로 밤을 마감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 표정과 반응이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하지 않는 말, 하지 않는 행동, 넘지 않는 경계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낸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그 절제의 미학 속에 내면의 강도가 숨어 있다.
삶은 아이러니하다.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수록 덜 소비하게 되고,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덜 말하게 된다. 어쩌면 지혜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말로 이해하려 했던 그 모든 시도들보다, 내가 말하지 않은 침묵이 더 많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https://medium.com/@irenekim1b/the-language-of-silence-6dbe09745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