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당신을 믿어요”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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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신뢰는 이론이 아니라 감정이며, 감정은 예측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신뢰란 추상적인 단어가 실제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도, 막상 직면하면 모호하고 흐릿하다.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기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신뢰란 결국 나의 능력이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신뢰”를 말한다.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선택했다면, 그 선택은 곧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지켜나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신뢰하지 못할 것 같다면, 처음부터 그 사람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너는 반드시 내가 실망하지 않을 존재여야 해”라는 요구는, 애초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감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관계에서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선구안’이다. 그 안목은 단기간에 생기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과 관찰,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신중한 선택 끝에 누군가를 받아들였다면,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선물은 바로 ‘무조건적인 신뢰’다. 신뢰는 조건이 붙는 순간 신뢰가 아니게 된다. 모두가 그 사람을 의심할 때, 나 혼자만은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당신을 믿어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값진 선물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우리는 종종 다짐한다. "다음 사랑에서는 나는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리라." 그러나 관계는 마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어쩌면 아주 사소한 몸짓에서도 의심은 불쑥 피어난다. 의심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생긴다. 신뢰는 그 반대다. 매 순간, 내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한다.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며,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고된 싸움이 반복된다.


신뢰는 선택이며, 의지는 그 선택을 지키는 힘이다. 반면, 의심은 감정의 중력처럼 나를 쉽게 끌어당긴다. 신뢰하려면 고요한 내면의 의지가 필요하지만, 의심은 소음처럼 불쑥 찾아와 흔들리게 만든다. 결국, 신뢰란 감정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시간이 흐르고,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나는 깨닫는다. 의심이란 얼마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인지.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고, 감정은 귀하다. 그토록 소중한 자원을 누군가의 진심을 증명받기 위한 탐색에 소비하는 일은 너무도 허무하다. 끊임없는 비교, 끝없는 확인, 수없이 반복되는 추궁과 의문.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삶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어떤 사람을 신뢰하기로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끝까지 그 사람을 믿는 것이다. 단,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그때는 조용히, 평화롭게 관계를 끝내는 것이 맞다. 신뢰가 끝났는데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죽은 꽃을 화병에 계속 두는 것과 같다. 시들어버린 감정 앞에서 억지로 아름다움을 강요하지 말자.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많은 이들이 신뢰하지도 못하면서 관계를 놓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매번 의심하고,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그 반복. 이것이야말로 시간과 에너지의 가장 큰 낭비이며, 그 낭비는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든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랑이란, 내가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게 신뢰라는 가장 값진 선물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선물 위에서 관계가 피어나게 두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숙이고,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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