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받아들임이 곧 수용이라는 뜻은 아니다.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보다,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가 방향을 결정한다.
수많은 관계와 선택지가 손을 흔들며 다가올 때,
그 모든 것에 응답하는 일은 삶을 피로하게 만든다.
때로는 거절이 곧 방향이고, 침묵이 곧 확신이며,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깊은 결단이다.
세상은 점점 더 속도를 요구한다.
빠르게 연결되고, 빠르게 반응하며,
빠르게 결정하기를 부추긴다.
그러나 본질은 언제나 느리고, 조용하며, 단단하다.
표면이 화려할수록 내면은 텅 비어 있고,
서둘러 잡은 인연은 대개 오래 머물지 않는다.
본능은 반응을 원하지만,
진실은 기다림 속에서 자란다.
불안은 무언가를 쥐려 하고,
확신은 손을 거두고 자리를 비운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가능성이 쉬어가는 중이다.
기회라는 말은 어딘가 날카롭다.
기회는 쫓는 것이다.
그러나 인연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회는 계산의 세계에 머물지만,
인연은 본질의 시간 위에 도착한다.
기회에 반응하는 삶은 분주하지만,
인연을 기다리는 삶은 깊다.
많은 것을 겪는 것보다,
가장 본질적인 하나를 만나는 것이 더 어렵다.
그 하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비워내는 삶은
표면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들에 마음을 들이지 않는 방식은
자기만의 고요를 지키는 가장 정제된 기술이다.
절제는 억제가 아니다.
절제는 안목이다.
무언가를 갖지 않기 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별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만남이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연결이 깊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말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진실된 만남은 설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씀으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기울여질 때,
그제서야 의미가 생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사실 가장 많은 것을 응시하고 있는 삶일 수 있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움직임의 본질을 구별해내는,
그 고요한 안목.
세상은 소유를 삶의 증명처럼 여긴다.
그러나 존재는 소유와는 다른 차원에 있다.
존재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존재는 증명되지 않는다.
그저 살아질 뿐이다.
지금 이 삶의 자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다.
단 하나의 것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리일 뿐이다.
그것은 버림이 아니라 선택이고,
기피가 아니라 명료함이며,
막연함이 아니라 정제된 방향감각이다.
정말로 오는 것은
언제나 조용히 도착한다.
함부로 오지 않고, 함부로 떠나지도 않는다.
그런 것은
오직 충분히 비워진 자리에서만 머물 수 있다.
이것이 삶이 가르쳐 준 것들이다.
본질은 항상 느리고, 고요하며,
언제나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받아들임의 태도는
받아들이지 않음의 지혜에 도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