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펼쳐주는 선물은 무엇일까”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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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이 살아간다는 건 무기력하게 내버려 두는 것과 다르다. 간절함은 오히려 결과를 방해하고, 강박은 평온을 깨뜨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은 방향이 있다.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며,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거나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


흐름에 맡긴다는 것은 관찰하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훈련이다.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이지, 완전히 손을 놓는 것이 아니다. 매일 글을 쓰고, 운동하고, 책을 읽으며 루틴을 통해 자신을 다듬고 있는 나는 이미 충분히 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강박이 덧붙여진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면 컨디션이 안 좋다.”

이러한 자기 정의는 현실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틀이 된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하루를 보냈을 때 완벽함을 경험했다. 그 순간,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기존의 정의가 깨어졌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믿음이 깨질 때마다 자아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판단으로 처리하지 않고, ‘내가 또 정의하려 하고 있구나’ 하고 가볍게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반복이다.


깨달음 이후에 다시 되돌아가는 현상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깊어지는 과정이다. 어제는 완벽했지만, 오늘은 5시에 일어났고, 눈을 뜨자마자 아쉬움을 느꼈다. 그 순간, 완벽한 날을 재현하려는 집착이 깨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자각했다. 이는 후퇴가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평온을 깨는 강박을 몰랐지만, 이제는 ‘강박이 있다는 것 자체’를 알아차리는 단계에 진입했다.


이 수련이 잘 되고 있다는 징후는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나의 흐름을 자주 관찰하고 있다.

둘째, 무엇이든 패턴화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있다.

셋째, 루틴의 변화에 무너지지 않고, 그 속에서 다시 나의 길을 찾고 있다.

넷째, ‘원래’라는 허상을 자주 깨뜨리고 있다.


오늘의 나는 어떤가. 어제의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났고, 오늘의 나는 5시에 일어났을 뿐이다.

'매일은 처음이고, 매일은 다르다. 평온함조차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평온을 목표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평온이 아니다. 오늘의 흐름을 그대로 허락한다.'


강박이 찾아올 때는 “또 왔구나” 하고 미소 지을 일이다. 그것도 나의 일부이며, 그조차도 흐름이다.


노력하지 마라.

계획하지 마라.

그저 매 순간 깨어 있으라.

그렇게 깨어 있는 것만이 진짜 노력이다.

– 틱낫한


이것이 내가 걷고 있는 길이고, 흐르고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은, 딜레마가 아니라 '리듬의 섬세한 조율'이다.


어제 새벽 3시에 일어났을 때의 미묘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의 집중, 몸과 마음이 함께 깨어나는 순간의 청명함. 그러나 오늘은 5시에 일어났고, 어제의 감정을 다시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스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나고, 오늘 하루도 충족될 것이다.


이것은 루틴에 중독된 마음의 혼란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붓을 쥘 때 손끝에서 오는 감각의 미묘함을 알아채는 감수성이다. 루틴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생의 미묘한 결을 다듬어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는다.


나는 지금, 루틴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루틴과 함께 숨 쉬는 사람이다.

루틴은 나의 생명 활동이고,

그 안에서 나는 사랑하고, 창조하고, 회복하고, 존재한다.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나 자체다.




“오늘 하루가 펼쳐주는 선물은 무엇일까”


이 한 문장 안에 수련의 본질이 모두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생각의 전환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 자체가 달라지는 일이다. 어제까지는 오늘을 계획하고 통제하려 했고,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속에 머물렀으며, 조금만 흐트러져도 실패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오늘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루틴을 억지로 따라가는 사람도 아니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 사이에서 요동치는 존재도 아니다. 나는 삶을 받아들이고, 그 흐름에 발맞추어 함께 춤추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흐름 위에 깨어 있는 자다.


수련은 이렇게 정리된다.


| 수련 전 /수련 중 /수련 이후


| 루틴은 해야 할 의무 | 루틴은 나의 중심을 지키는 축 | 루틴은 내가 사랑하는 삶의 방식


|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 | 몇 시에 일어나든 결국 나는 한다 | 몇 시에 일어나든 그것이 오늘의 흐름


| 어제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 놓쳤다는 마음이 순간 지나간다|오늘만의 선물이 있다는 믿음으로 간다


| 루틴을 안 하면 무너질까 두렵다 |안 해보니 실제로 무너졌음을 깨달음 |그래서 더 사랑으로 루틴을 품는다




지금 나는 수련 이후의 마지막 섬세한 줄 하나를 매만지고 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드는 아쉬움조차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일이다. 이것은 선이며, 명상이자, 삶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오늘 5시에 일어났네.
오늘 하루가 나에게 무엇을 선물하려고 이 시간을 정했을까?
이건 또 어떤 선물일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배하려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시간과 협력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평화롭고 유연한 자아가 태어난다.


이미 수련을 실천하고 있다.

첫째, 깨어있는 관찰을 통해 생각의 패턴을 즉시 알아차린다.

둘째, 루틴을 강박이 아닌 사랑의 방식으로 유지한다.

셋째, “나는 나로서 괜찮다”는 내면의 끈끈한 신뢰로 스스로를 인정한다.

넷째, 하루를 통제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시선으로 시간과 마주한다.


그러니 오늘의 선물을 있는 그대로 받는다. “내가 오늘 3시에 일어났어야 했는데…”가 아니라

“오늘은 5시에 일어났고, 그건 오늘이 나에게 주고 싶은 흐름이겠지.”

이 생각을 매일 아침 단 한 번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나는 매일 새롭게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수련의 과정을 나누기 위해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도 오늘 하루가 펼쳐준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선물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what-gift-will-today-unfold-f8b9ca6e8c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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