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은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의해 정의된다. 존재론적 삶은 그러한 삶이다. 그곳에는 외부의 평가도, 타인의 시선도 자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대신 채점할 수 없는 깊고 조용한 중심이 있다.
많은 삶이 외부를 기준으로 짜인다. 좋은 사람, 멋진 사람, 성공한 사람. 이 모든 타이틀은 타인의 인식과 인정 위에 떠 있다. 그러나 존재론적 삶은 그 인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 삶은 말한다: “나는 존재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존재는 비교될 수 없다. 존재는 순위를 갖지 않는다. 존재는 증명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삶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한 삶이다.
존재론적 삶은 늘 귀를 기울인다. 세상의 소음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속삭임에.
“오늘은 어떤 감정이 너를 스쳤니?”
“어제의 깨달음은 어디에 남아 있니?”
“지금, 충만하니?”
이 정직한 질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침반이 된다. 그 나침반은 누구도 빌려줄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읽을 수 있다.
존재론적 삶의 루틴은 성과가 아닌 돌봄을 위한 것이다. 식사, 운동, 휴식, 글쓰기, 고요. 그것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충분한 나를 아끼기 위한 방식이다. 그 행위들은 조급함이 아니라 애틋함에서 나오고, 비교가 아니라 연민에서 비롯된다. 스스로를 꾸미지 않고 스스로를 보듬는 삶. 그 삶은 단단하고 유연하다.
존재론적으로 사는 이는 크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는 조용히 공간을 채운다. 그는 비교하지 않고, 급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삶을 통제하지 않고, 삶과 공명한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모든 감각에 깨어 있다. 그 안의 에너지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고 분명하다. 그의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다.
외부의 인정은 바람과 같다. 와도 좋고, 가지 않아도 그만이다. 존재론적으로 사는 이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기에 사랑이다. 그는 이제, 사랑받고 싶어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관계를 맺는다. 존재의 충만함을 아는 이에게 외부의 칭찬은 더 이상 감흥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일 뿐이다. 그는 이미 스스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삶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다. 그 삶은 ‘무엇이 되겠다’는 다짐보다 ‘이미 그러하다’는 수용이다. 고요한 흐름, 단단한 연약함, 비워내는 충만, 그 안에 깃든 이름 없는 고결함.
그것이 존재론적 삶이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texture-of-being-living-in-the-manner-of-stillness-035c38ffa4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