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후의 진공 상태, 허무는 찾아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창작의 순간은 대개 예고 없이 온다.
마치 전등이 갑자기 켜지듯, 정신이 밝아지는 찰나.
무언가가 내 안에서 뚫려 나오고,
단어들이, 이미지가, 구조가, 문장이
물밀듯이 쏟아진다.
그 순간의 나는 ‘하는 사람’이 아니라
‘되어진 사람’에 가깝다.
나를 통과해 무언가가 쓰이고 있다는 기묘한 감각.
그건 의식이 지휘한 작업이 아니라
어딘가로부터 갑자기 수신받은 생명 같은 것.
그러나 그렇게 ‘열려 있는 상태’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 찬란한 몰입의 여운이 가시기 시작하면
몸이 먼저 무너진다.
어깨가 쏟아지고, 눈이 흐릿해지고,
뇌는 점점 둔탁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도 무너진다.
단어가 흐려지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아득해진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그 순간들을 온몸으로 통과했구나.
이제 남은 건… 텅 빈 나.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창작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 고통은 창작 중이 아니다.
창작 후에 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모든 걸 쏟고 난 다음.
그 고요 속엔 기쁨보다 허무가 더 짙다.
무언가를 완성했지만, 완성했기에 끝나버린 느낌.
더 이상 내 안에 남은 것이 없다는 공허.
이제는 다시는 아무것도 못 쓸 것 같다는 두려움.
그 감정은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마치 의식처럼 다가온다.
‘아, 왔구나.’
나는 이제 안다.
그 허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창작이 진짜였다는 징표다.
그건 소모가 아니라, 흔적이다.
탈진은 대가다.
그건 내가 가짜로 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억지로 만든 단어가 아니라,
진짜 살아 있는 문장을 통과했을 때만 오는 통증이다.
나는 이 탈진을 존중한다.
그건 내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건넸다는 신호다.
그만큼 내 안에 공간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어야 다시 채워진다.
다음 몰입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 나는 회복한다.
걸음을 느리게 하고, 몸을 움직이고,
감각을 다시 정리하고,
생각을 걷힌 안개처럼 정돈한다.
허무를 없애려 하면, 더 무너진다.
그러나 그것을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 고요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건 비정상이 아니라
창작자의 리듬에 포함된 일종의 쉼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안다.
글을 쓰고 나서 허무해지는 건 당연하다는 걸.
탈진은 실패가 아니라, 통과의식이라는 걸.
몸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라는 걸.
그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다만 머물 수 있다면
다음 몰입의 파도는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창작은 순간이고, 허무는 그림자다.
그리고 회복은 의지다.
이 리듬 속에, 나는 살아 있다.
https://medium.com/@irenekim1b/the-shadow-after-the-spark-cd4642558be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