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감정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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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해 놓고,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이 짧은 말 한마디는 단순한 우정과 사랑의 원칙을 넘어, 나의 존재 방식 전체를 꿰뚫는 고백이자 선언이다. 언뜻 보면 그저 인간관계에 대한 소박한 신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철학적 태도, 의식의 깊이, 심리적 자각, 그리고 존재론적 결단까지 응축되어 있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던진 조약돌 하나가 심연까지 파문을 일으키듯, 이 말은 내 내면의 질서 깊은 곳까지 이르러 나를 점검하게 만들었다.


이 말은 단지 ‘신뢰하자’는 당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어떻게 세계와 관계를 맺는지를 묻는 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전제는 이렇다. “책임은 외부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 이는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의 자기 수양에서, 실존주의자들의 자유의식에서, 혹은 동양의 내재 윤리적 전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입장이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을 기준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존재다.


내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했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나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거나, 그 신뢰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의 문제다. 이 태도는 감정적으로 의존하거나 반응하는 관계의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의식이 분명한 인간이 선택에 수반되는 책임의 틀을 인식하고 있다는 표시이며, ‘신뢰’를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관계의 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나는 인간관계를 감정적 흐름이 아니라 명확한 틀과 방향을 가진 구성으로 바라본다. 관계란 우연히 형성되고 흘러가는 감정의 장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설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나는 관계를 가볍게 시작하지 않는다. 선택은 신중해야 하며, 선택한 관계에는 일관된 신뢰를 의식적인 기준에 따라 부여한다. 그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먼저 그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선택, 나의 판단 기준, 나의 내면적 체계를 먼저 돌아본다. 그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내 방식의 미완성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뢰란 감정의 문제이기 이전에 관계를 바라보는 나만의 기준과 틀의 문제다. 감정 기반 신뢰는 흔들리기 쉽지만, 내면의 일관성과 책임감에 기반한 신뢰는 흔들림 속에서도 그 근거를 점검할 수 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을 전제로 하되, 내가 그 사람을 삶 안으로 들였을 땐 그 불완전함까지 감당하겠다는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뢰를 준다는 것은 단지 이상적인 기대를 갖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의심과 유혹, 불안의 목소리를 넘어서는 선택이자 수련의 길이다. 신뢰하지 않으려는 수많은 이유가 매일같이 생겨나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점검하고, 나의 관계 틀을 다듬어가며 그 관계에 대한 태도를 선택한다. 그것은 훈련이고 태도이며, 지속적인 내면의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내가 먼저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가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그런 일관된 태도와 신뢰 가능한 기준을 품고 있어야 한다. 신뢰는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 성숙한 태도와 수용, 그리고 명확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다짐이다. 흔들림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방식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그래서 나는 흔들릴 때마다 내 내면의 체계를 다시 점검한다. 그것은 신뢰의 실패가 아니라, 성찰의 기회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보통 관계가 무너지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배신당했어.” “그 사람을 믿은 내가 바보였지.” 하지만 나는 다른 식으로 반응한다. “그 사람을 선택한 건 나다. 그러니 신뢰가 무너졌다면, 그것은 나의 판단 혹은 책임의 미성숙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투사하지 않는 태도다. 감정을 외부로 투사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모든 감정과 판단을 나의 내면 체계에서 발생한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자각은 인간관계에서 타인을 조정하거나 통제하려는 태도와는 다르다. 대신, 나는 나의 방식과 내면의 질서를 더욱 정밀하게 조정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다룬다. 내면의 기준을 더 정제하고, 나의 선택이 향하는 방향성을 다시 점검한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책임 있는 방식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태도다. 타인보다 나의 반응을 먼저 관찰하고, 그로부터 내 의식의 상태를 추적한다. 그래서 관계는 늘 나의 거울이 된다.


이 말은 단지 ‘신뢰는 중요하다’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다. 이 말은 “내가 허락한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존재 선언이다. 인간은 세상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내가 허락한 사람, 내가 열어준 관계,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이라면, 그에 대한 무게를 감당하는 것도 내 몫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의무감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선택한 세계를 책임진다는 이 말은, 주체성, 내면의 질서, 책임감 있는 관계 구성력의 언어다.


결국 이 모든 태도는 나의 존재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결단에서 비롯된다. 가볍게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정합의 틀 속에서,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무게 있는 관계를 꿈꾼다. 신뢰는 그렇게 생겨난다. 감정이 아니라 선택의 책임 위에서. 좋아서가 아니라, 함께하기로 내 존재가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신뢰는 내 존재의 연장이 되고, 더 이상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통해 내 존재의 골격이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https://medium.com/@irenekim1b/if-i-choose-someone-as-a-friend-but-cannot-trust-them-then-the-problem-is-not-with-them-but-3f4835e16e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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