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는 삶에 대하여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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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채우려는 존재다. 우리는 자주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고, 어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려 하며, 선택의 연속 속에서 확신을 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늘 비워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하고 단단한 준비다. 손에 가득 쥔 사람은 새로이 다가오는 것을 붙잡을 수 없으며, 마음이 과거의 잔해들로 채워져 있다면 어떤 미래도 들어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성장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에 가깝다. 비워내는 사람만이 삶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온전히 맞이할 수 있다.


단절은 종종 실패의 낙인처럼 여겨지지만, 실상 그것은 가장 정교한 선택의 한 형태다. 관계든, 사물에 대한 애착이든, 과거의 방향성이든,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하는 것들과의 결별은 곧 생의 균형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에 기대지 않기로 하는 결심. 그것이 단절이며, 단절은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은 비로소 존재가 깃들 수 있는 침묵의 토대가 된다.


인생은 여백을 품은 언어와 같다. 모든 것을 빼곡히 채운 문장은 숨 쉴 틈이 없고, 한 사람의 삶이 늘 누군가로,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다. 때로는 ‘없음’이 ‘있음’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법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그 안에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고, 창조가 가능해진다.


비움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기도 하다. 공허, 불안, 애매함 같은 것들이 처음엔 우리를 위협처럼 감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안다. 그 감정의 실체는 두려움이 아니라 낯설음이었다는 것을. 익숙한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평온이 들어오는 시간. 그것이 바로 비움이 허락하는 성숙의 시간이다.


가장 단단한 건축물은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인간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어떤 흐름도 통과할 수 없는 완전한 충만은 곧 질식이며, 오히려 틈이 있는 존재가 살아 숨 쉬는 법이다. 단절은 그 틈을 만들어낸다. 일시적인 허기일 수 있으나, 그 허기를 견디는 자만이 진짜 영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나 관계, 성취와 성공을 통해 삶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삶이란 채움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비워진 마음, 멈춘 선택, 끊긴 흐름 속에서야 비로소 진실한 관계가 들어설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다가오며, 방향이 명확해진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자리에 앉아 있다. 그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진실과 마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단절은 끝이 아니다. 단절은 문을 닫는 일이 아니라 문 앞을 치우는 일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감정과 기억, 의미를 다 털어내고 나서야 새로운 누군가가, 어떤 가능성이, 혹은 아직 알지 못한 나 자신이 들어올 수 있다. 결국 인생은 쥐는 것보다, 무엇을 놓을 수 있는가로 깊어진다.


비워진 공간에서 시작된 존재는 더 단단하다. 그것은 애써 만들어낸 안정이 아니라, 스스로 허락한 평온이다. 그래서 가장 고요한 선택이 때로는 가장 혁명적인 전환이 된다. 그 침묵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삶은 나에게 진짜 의미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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