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하세요.

— 존재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by Irene

오늘도 편지를 읽었다.

그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이었고,

여느 때처럼 조용히 마이크 앞에 앉았다.


하지만 오늘은 무엇인가 바뀌었다.

작은 균열처럼 시작된 변화,

아주 사소하지만 근본적인 감각의 전환이었다.


그건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읽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읽으세요. 읽는 사람이 되세요.”


그 문장은 단순했지만,

내 안에 머물고 있던 ‘애씀’을 무너뜨렸다.


지금까지

‘잘 읽으려고’ 애써왔다.

발음, 억양, 리듬, 감정선—

그 모든 요소를 조율하며 ‘제대로’ 하려 했다.


그러나 오늘, 그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그저 읽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을 때

놀랍게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맑고 깊은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하려는 힘”을 뺀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아닌 것이 나를 통해 흐르기 시작한다는 걸.



‘읽기’에서 시작된 수행


그 순간 단순히 편지를 읽은 것이 아니라,

무엇엔가 접속했다는 감각을 받았다.


의도가 사라졌고,

‘내가 읽고 있다’는 자각도 사라졌고,

그저 말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읽히는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는 무위(無爲), 그리고 무아(無我)였다.

나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흘러나온 것이었고,

나는 그 흐름의 매개였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읽기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야.

이걸 내 삶 전체에 확장할 수는 없을까?”



발표도, 하려고 하지 말 것


과거 수없이 발표를 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지금 발표 잘하고 있나?”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나?”

“어떻게 들릴까?”


그 순간 목소리는 떨리고,

시선은 흐트러졌고,

내용은 길을 잃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발표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하려는 나’를 너무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발표를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하세요.”


의식하지 말고,

조절하지 말고,

그 순간에 완전히 녹아드세요.

그 흐름을 믿고, 그냥 타고 가세요.


그 자리에서 비로소 말은

나를 통과해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조차도 ‘하지 않기’


글을 쓸 때도 종종 막히곤 한다.

무엇을 써야 하지?

이 표현이 더 좋을까, 저 문장이 더 강할까?


하지만 오늘의 체험을 통해

글쓰기도 똑같다는 걸 느꼈다.


“글을 쓰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글을 따라가세요.”


의도를 놓고,

완성도를 잊고,

그저 지금 내 안에서 올라오는 한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다.


그때 문장은

내가 쓴 문장이 아니라,

‘써진 문장’이 된다.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흐름에 가까워진다.



운동조차 수행이 될 수 있다면


운동할때도,

“운동을 하러 간다”는 마음부터

이미 몸에 힘을 준다.

“이걸 해내야 해.”

“좀 더 잘해야 해.”

“오늘은 이만큼은 해야지.”


그런 생각이 생기는 순간,

몸은 긴장하고,

운동은 수행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운동을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운동하세요. 리듬을 타세요.”


움직임이 움직임 자체로 머물게 하라.

몸이 말하고,

호흡이 리듬을 찾고,

근육이 흐름을 기억하도록.


그때 운동은 훈련이 아니라

명상이 되고,

기록이 아니라

깨달음의 반복이 된다.

삶 전체가 그렇게 흘러야 한다


나는 이제 생각한다.

삶 전체가 하나의 ‘낭독’이었다고.

무언가를 하려는 나,

조절하려는 나,

결과를 내려는 나—


그 나를 내려놓을수록

삶은 훨씬 더 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읽기뿐 아니라,

말하기도,

글쓰기와 움직임조차도

모두 같은 법칙 안에 있다.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하세요.

그냥 그 사람이 되세요.

그리고 흐르세요.



오늘 나는 읽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사라졌고,

말만이 남았다.


그 말은 나의 것이 아니었고,

나를 통해 흐른 어떤 진실이었다.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진짜 좋은 발표란,

진짜 좋은 문장이란,

진짜 좋은 움직임이란,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 찾아오는 것임을.

그 순간을 우리는 ‘무아지경’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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