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서평]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를 읽고

충페이충 지음, 미디어숲 출판 / 권소현 옮김

by 채유

학생 시절에는 성격이 급하고 완벽주의였어도 나 자신을 통제하고 성과를 이룩하면 되는데 그쳤기에, 사실 '분노'의 강한 감정을 오히려 원동력으로 삼는 편이었다. 그러나 회사원으로 살던 어느 날, 욱하는 감정이 눌러지지가 않고 미약한 분노 조절 장애가 오면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뇌가 뜨거워지는 듯한 물리적인 신체 반응을 자각할 때면 화난 캐릭터의 머리에서 김이 솟아오르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연상됐다. 생리 주기와 겹쳐서 호르몬이 불안정한 상태가 될 때면,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어떤 기분에 임박해서, 일을 더럽게 못해서 나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어느 상대방에게 수화기를 들고 고래고래 악담을 퍼붓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성으로 눌러 담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마저 일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놀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툭하면 '그럴 수 있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중얼거리고, 무교임에도 깊은 호흡과 함께 '나무아미타불'을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기사에서 본 '분노가 차오르는 상황을 마주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거리를 두는 효과가 발생해, 분노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일시적으로 사무실 책상에서 이탈하는 방식을 실천했다.


하지만 업무 외적으로는 분노에 차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보건복지부 캠페인의 '흡연은 질병입니다, 치료는 금연입니다'처럼, '치료는 퇴사입니다'가 떠오르는 것은 착각일까. 그나마 최근에 임팩트 있었던 일상 경험을 꼽자면, 기프티콘을 쓰려고 방문한 카페에서 결제가 잘 진행되지 않아 폰을 넘겨줬더니, 카운터 직원이 내 폰의 갤러리를 뒤지고 있는 장면을 발견했던 일이었다. 앱의 기프티콘 화면이 인식되지 않는 것 같아서, 기프티콘을 로컬에 다운로드해 바코드를 읽혀보려는 시도가 그 행동의 이유였다. 그 시점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황당함이 더 컸지만, 결제를 다 하고 카페 2층으로 올라가 곱씹다 보니 분노에 휩싸여서 어질 할 정도였다. 기분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뒤늦게 카운터 직원한테 달려가서 표출을 할 것 같았기에 속으로 이 감정을 분석하려고 애써봤다.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성을 동원하는 김에 카페에 간 이유를 떠올렸고, 빨리 목적을 달성하고 카페를 떠나는 것이 심신에 이롭겠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무사히 속으로 삭일 수 있었다.


책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를 읽으며 그때의 분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업무 관련하여 화가 나는 경우는 너무 잦게 발생하다 보니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것 또한 구체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이유가 전부가 아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니 나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에 관련하여 감정 조절, 초탈에 가까운 정신 수련 등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렇게 분노 자체를 상세하게 분석한 책은 처음이었다. 꼭꼭 씹고 물고 뜯고 맛보면서 분노하면 떠오르는 빨간색 심상이 아닌, 분노의 이면에 자리한 감정들의 색체가 덧입혀지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모르면서도 용케 잘 참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말로 '분노의 근원'을 찾아보는 연습과 나 자신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책은 총 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장에서는 분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사례, 사람들의 대처 방법을 다루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부터 일곱 번째 장까지는 분노 뒤에 숨어 있는 '원인 감정' 위주로 분석하여 다 같은 분노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① 심판: 나는 맞고 넌 틀렸어, 상대의 행동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동원된 라벨링/전면 부정/섣부른 일반화와 이러한 판단 근거가 되는 나에게 내재된 규칙

② 기대 과잉: 자신의 요구나 기대가 좌절될 때, 상대방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능력의 한계인가? 의지의 문제인가?

③ 자기 요구: 나의 규칙을 지킬 것을 타인에게도 요구할 때 강요의 형태가 되며, 적절한 포기와 허락, 유연성이 필요

④ 감정의 연결: 상대방이 자신의 좌절감/억울함/무력감/불안 등의 나약한 감정을 알아주길 바랄 때

⑤ 두려움: 걱정의 표출, 나와 상대방 모두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보호되고 편안함과 올바름을 준수하기를 바라는 마음

⑥ 사랑: 희생과 헌신, 이해와 인정 등 관계 속에서 생기는 기대와 권리

…로 각각의 장이 분류되어 있다. 핵심 내용 위주로 짧게 요약하였으므로 모호하거나 중복된 내용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분노는 다양한 감정을 기반으로 생성되고 분노 해소(이해,표출,이용 등)도 그 결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분노'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책의 서술과 예시를 통해 자아 성찰을 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뜻밖이었으며 표지를 펼치기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나의 경우, 일을 하면서 화가 나는 경우에 대해서는 ① 업무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는 상대방을 보며 '당연히 프로세스를 지켜야지'라는 내재 규칙 미충족, ②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사람/업무를 마주하면서 느끼는 무력감, ③ 업무 관계자의 무능력으로 인해 나에게 일이 전가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쾌감, ④ 나는 어려워도 해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을 경우 기대 미충족과 인정 욕구 때문 등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카페 직원의 갤러리 접속 사례에서의 분노는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 안 된다'라는 내재 규칙에 기반하여, 일반적인 상식으로 설정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카페 직원에게 기대 좌절과 함께 '넌 틀렸고 잘못한 거야'라는 심리가 이면에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30년 '나'로 살아간 내면이 이렇게 복잡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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